[정진원의 세계여행] 오사카와 아스카 >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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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연재

Vol.231 2019년 03월호 [정진원의 세계여행] 오사카와 아스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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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맑은소리맑은나라 작성일19-04-02 14:25 댓글0건

본문

 

오사카와 아스카

 

일본과 일본인

어릴 때 세상에 나쁜 두 나라가 있다고 배웠으니 북한과 일본이다. 90년대 초 난생처음 북한 사람들을 유럽에서 만났을 때 놀라움이란. 김일성배지를 달았을 뿐 우리랑 똑같이 생긴 데다 유럽도 올 수 있다는데 깜짝놀랐던 것 같다. 그러나 대여섯 명씩 늘 무리를 지어 다녔다.

일본이야 두말할 필요없이 독립운동하던 애국지사들의 고생, 식민지 시절 악랄했던 소행을 듣고 자란 우리 세대는 일본인이 짐승만도 못 한 줄 알았다. 그런데 터키대학에 근무하러 갔더니 같은 층에 일본학과와 함께 한국학과가 배치되어 있었다. 그 전에도 혼자 여행다니는 사람이 많았던 일본여행자를 외국에서 만나면 의외로 친절하고 유용한 정보를 알려주어 새롭던 기억이 있었다. 그래서 일본은 나라라는 덩어리로 만날 때와 개인으로 만날 때 이렇게 달라지는 모양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물론 자유여행 1세대인 필자는 외국에서 생김새가 비슷하다는 데서 우선 호감도가 높아지고 우리보다 최소 10년 앞선 선진국의 문물을 경험할 때마다 묘한 이율배반적인 감정이 들곤 했음을 고백할 수밖에 없다. 결과적으로 터키에서 만난 일본인선생님들은 지금도 절친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함께 터키의 이방인으로 살며 동고동락하던 경험과 시간의 켜가 쌓여 만나면 그 시절의 화양연화를 이야기하곤 한다. 참 좋은 시절이었다. 이제 나라의 국경은 달라도 한중일 삼국이 문화의 국경은 하나라는 필자의 지론에 따라 일본을 역사 문화적 측면에서 심도있게 들여다보고 있다.

 

일본여행 중 일어난 해프닝 Big3

언젠가 이렇게 글을 쓰며 여행을 하던 이 시간도 그렇게 기억될 것이다. 사실 이번 여행은 모처럼 호젓하게 글 쓰러 갔다가 답사여행이 되었지만 그래서 더욱 좋았다. 목표를 포기하니 찾아오는 홀가분함과 고즈넉함이라니! 젊을 때는 호기심과 모험심만으로 좌충우돌 해프닝이 많았다면 이제는 여행 30년 차여서 조심조심 똑같은 실수를 안 할 줄 알았다. 하지만 세 번의 강산이 변해도 생각지 못한 소소한 사건들이 여전히 여행을 풍성하게 해준다는 사실을 이번에

알게 되었다. 먼저 생각나는 세 가지를 읊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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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사이 쓰루패스를 잃어버리다

먼저 꽤 값이 나가는 일본 간사이 쓰루패스 3일짜리 패스를 제대로 써보지도 못하고 잃어버린 일. 내가 선택한 것은 3일을 무제한 장거리까지 탈 수 있는 제일 비싼 5200엔짜리 교통카드이다. 가령 기본거리 180엔으로 계산하면 3일에 무려 28번을 탈 수 있는 패스이다. 그런데 그걸 180엔만 쓰고 잃어버린 것. 연속으로 사용할 줄 알았던 그 패쓰는 국영철도인 JR만 빼고 마음대로 탈 수 있는 것이었는데 안타깝게도 필자의 목적지는 JR만 다니는 곳. 결국 별도로 JR 460엔짜리를 끊어서 거의 왕복 천엔을 가외로 써야 했다. 할 수 없이 180엔밖에 못 쓰고 3일 중 하루를 마감하려는 순간 그 패쓰를 잃어버린 것이다. 어찌나 아깝던지.

그러나 그것은 시작에 불과했으니 내가 내려야 할 역을 잘못 내려 하염없이 걸어 도착하곤 왜 이렇게 멀지 했다가 그걸 그 다음날에야 알아챈다든지 하는 건 애교로 넘어가주자.

 

핸드폰이 자살을 시도하다

두 번째 사건사고의 날이 왔으니 아스카에 갔을 때 핸드폰이 물 속에 빠진 것이다. 말이 핸드폰이지 그것으로 숙소예약, 카드결제, 카메라, 길찾기, 정보검색, 일본어 번역 등 모든 것을 다 하고 있었으니.. 이 친구가 죽으면 당장 눈멀고 귀먹고 오도가도 못하는 신세가 된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다. ‘이 작은 기계에 이렇게 의존하고 있었구나정도가 아니라 거의 노예로 살고 있었음을 깨닫는 시간이었다. 다행히 생활방수라는 게 되어서 별일없이 여행을 계속할 수 있었다. 그러나 순간적으로 이 핸드폰이 활어처럼 살아서 미친 듯이 물속으로 뛰어드는 사건은 경험자만이 필자의 말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자전거에 받히다

그러나 이것도 약과에 불과했으니 여행 30년 동안 죽을 뻔한 기회가 종종 있었지만 또 처음 경험해보는 일이 도사리고 있었으니 자전거의 나라 일본에서 자전거에 치인일이다.

때는 한 밤중, 오밤 중에 한 번도 나가본 적이 없어 구글지도가 밤에는 그렇게 맥을 못 추는 줄도 모르고 반대방향으로 하염없이 가고 있다가 결단을 내려 택시를 잡으려 손을 든 순간, 뭔가 거대한 힘이 나를 휩싸고 지나갔다. 이게 뭐지 하는 순간 필자는 비명을 지르고 땅에 엎어져 있었다. 정신을 차려 알게 된 전말은 두 남녀가 자전거 하나에 함께 타고 오다가 필자를 못보고 덮친 것이다. 두 사람의 하중이 내 왼쪽 어깨를 치고 넘어지면서 나는 팔꿈치로 땅바닥을 있는 힘껏 가격하며 쓰러졌다.

한밤중에 인적도 없는 곳에서 젊은 두 사람이 어떻게 변할지도 모르는 상황, 순간적으로 당황한 나는 어깨를 부여잡고 괜찮다고 그냥 보냈다. 나중에 듣자니 1인 자전거에 두 사람이 타는 건 불법이란다. 두 사람이 밤이라 희희낙락하며 전속력으로 달리다 그 체중을 실어 나에게 달려들었으니 어깨만 그만한 게 천만다행이라는 생각이 새록새록 들었다.

문제는 다음날 아침이었다. 전혀 어깨를 쓸 수 없을 지경으로 아픈 것이다. 마침 그날이 금요일이라 오전 진료밖에 안 한다는 지인의 문자를 받고 근처 병원에 택시를 타고 갔다. 그랬더니 그 병원은 뇌전문병원이라 응급 골절환자만 본다며 또 다른 병원을 알려주었다. 다시 택시를 타고 좀 더 큰 병원으로 갔더니 이번엔 더 큰 외국인 대상 적십자병원으로 가라는 것이다. 이미 그러느라 오전이 거의 지나가고 있었다.

나는 이들이 나를 외국인이라고 의사소통의 어려움 때문에 피하고 있다는 사실을 간파하였다. 그래서 여기서 진료 안 해주면 안 나가겠다고 버티며 도대체 너희나라 말이나 영어로 타박상, 인대, 탈골, 압박붕대를 말할 수 있는 외국인이 얼마나 있다고 의사소통 운운하며 진료회피를 하는가 하고 항의했다. 그랬더니 갑자기 태도를 돌변하며 필자에게 영어 잘한다며 진료를 봐주겠다는 것이 아닌가. 외국에선 아니 일본에선 어줍잖았던 필자의 일본어보다는 영어가 대우를 받는다는 것과, 일단 항의성 화를 내고 볼 일이라는 팁을 얻었다고나 할까. 씁쓸한 사건이지만 결론은 해피엔딩으로 끝났다. 다행히 뼈에는 이상이 없다고 10장의 X-ray사진이 증명해 주었던 것이다. 그러나 물리치료를 받고 있어도 한 달이 되어가는 지금 왼쪽 어깨를 거의 쓰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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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스카의 귤사, 성덕태자 태어난 곳

이제 이 모두를 상쇄하고 남을 필자가 좋아하는 명소를 이야기해야겠다. 이번 여행 중 가장 만족도가 높은 세 곳, 베스트 3를 꼽자면 쇼토쿠태자가 태어난 귤사 다치바나 데라, 그가 죽어서 묻힌 예복사 에이후쿠지, 그리고 뭐니뭐니해도 일본 최초의 절 아스카 데라이다.

먼저 다치바나 데라, 귤사. 절 이름이 귤절이라니 재미있지 않은가. 우리나라는 불교 의미를 담거나 유명한 스님 이름에서 유래한 절이 많은데 우리도 그 지방에 많이 나는 과일로 사과절, 배절, 복숭아절하면 굉장히 유니크하고 가보고 싶은 절이 될 것 같다. 귤절은 이름도 정겹지만 평지 밭과 들판이 펼쳐진 곳에 그림처럼 들어앉아 있어 마음이 더욱 푸근하다.

특히 이번에 필자가 가장 상 받은 것처럼 좋았던 점은 귤사 관음전의 여의륜 4수관음을 마음껏 찍을 수 있었던 일이다. 일본에 가서 오래된 유물이나 불교관련 문화재를 보거나 찍는 일은 정말 하늘의 별따기이다. 왜 그리 꽁꽁 싸매놓고 문을 닫아걸고 발을 치고 촬영을 엄금하는지 정말 답답하기 짝이 없다. 그래서 지금까지 문화재보존이 잘 돼 있는 것은 고마우나 우정 그곳에 그 유물 하나 보러 갔는데 헛걸음하기 일쑤이고 볼 수 있어도 촬영금지여서 엽서나 책을 사들고 그거라도 어디냐고 나를 위로해야 하는 일이 한두 번이 아니다. 그런데 귤절은 그렇지 않았다. 지금이 겨울이고 그다지 유명한 절이 아니어서 그런지 1월말 오후에 간 그 절에는 오직 필자뿐이었다. 심지어 앞뒷문에서 입장료 받는 사람도 없고 대웅전 격인 쇼토쿠 태자전기념품점 사미스님이 거기서 입장료를 받고 있었다.

그러니 관음전은 그야말로 독차지. 처음엔 가슴 두근거리며 사진을 조심스레 찍다가 동영상까지 찍었다. 슬금슬금 가까이 다가가니 아예 절에서 출토된 기와파편들과 오래된 책들, 그리고 원효의 무애박을 연상시키는 전승공예 호리병들 전시까지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이 푸근한 우리 정서를 아스카에서만 맛볼 수 있다는 것도 놀라운 일!

앞으로 아스카의 호리병 공예장식품과 한땀한땀 바느질해 만든 수제 축구공 등 이 지역 전승 문화에 대해 좀더 공부를 해보고 싶다. 혹시 원효의 무애박이라든지 김유신과 김춘추의 축구로 인한 사돈맺기 등 신라문화 자취의 실마리가 될 지도 모르니.

 

이렇게 내가 살던 곳을 떠나면 시간과 공간이 확장되고 신세계가 펼쳐진다. 잠시 다른 생에 태어난 것 같다. 그래서 필자는 가끔 전생과 다음생이 사실은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현생에 함께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선진국을 가면 앞으로 펼쳐질 미래세가, 개발도상국에 가면 몇십 년 전 우리 과거 모습과 정서를 고스란히 볼 수 있듯이 각자 살아오고 경험한 만큼의 카르마를 이생에서 갚기도 하고 누리고 간직돼 뭉클할 때가 있다.

이번 아스카 여행에서 필자는 고구려 자취의 다카마츠, 백제장인이 지은 아스카, 뜬구름같은 신라의 편린도 보았다. 한국학 여행자의 지극한 행복이다. 다음 호에는 쇼토쿠 태자가 지은 사천왕사와 그가 죽어서도 살아있는 현장 예복사를 답사할 것이다. 백제 도래인의 모계 후손 쇼토쿠를 좀더 깊이 만나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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