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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맑은초대석

Vol.231 2019년 03월호 국제포교사회 김성림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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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맑은소리맑은나라 작성일19-04-03 10:46 댓글0건

본문

 

한국불교 세계화가 저의 원력 願力입니다

국제포교사회 김성림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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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마다 올곧은 수행을 하고, 생각과 말과 행동을 바르게 하면 세간의 질서 또한 바로 선다는 이치를 알기에 우리 불자들은 부처님 가르침을 따르고 실천할 것을 발원합니다.”

조계사 대웅전에서 열린 불기 2563년 한국불교지도자 신년하례법회에 참석한 대중들은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부처님 가르침을 따르고 실천할 것을 결의하는 200여 불자들의 표정에는 단단한 결심이 가득했다.

 

기해년己亥年의 출발을 알리는 이날 법회에 참석한 사람 중에는 국제포교사회 김성림 회장도 있었다. 유난히 큰 키에 밝은 미소를 지닌 김성림 회장은 멀리서도 한눈에 들어오는 모습이었다.

법회를 마무리하고 자리를 옮겼다.

김회장은 국제포교사회 회장 이전에 신심信心과 원력願力이 남다르기로 유명한 백련암 불자였다. 김성림 회장이 국제포교사회와 인연을 맺은 것도백련암에서 출발했다.

 

도인스님 스님에게서 배운 불교

신심 깊은 할머니와 어머니를 따라 절에 열심히 다닌 저는 그야말로 불교 집안 출신의 모태신앙입니다. 저희 5남매는 생일이 되면 전날 어머니와 함께 부산 영주암으로 가서 하루를 잔 뒤 다음날 새벽에 부처님께 인사를 드리고 절에서 끓인 미역국을 먹고 집에 와 학교에 갔습니다. 어머니의 열정이 대단했고 아버지는 나중에 영주암 중창 불사를 주도하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어린 시절을 보냈고 성인이 돼 해인사 백련암에서 진짜 불자로 거듭났습니다. 하하.”

김회장이 백련암과 인연을 맺은 것은 그야말로 우연이었다. 조카의 입시기도를 하러 가자는 언니의 권유로 자연스럽게 백련암으로 향했다. ‘도인스님’, ‘철 스님으로 불리던 스님이 계시다는 얘기는 들었지만 막상 그렇게 빨리 백련암과의 인연이 닿을 것이라고는 생각도 못했던 때다.

“19802월이었습니다. 그때는 젊은 여자가 백련암에 들어가려면 무조건 3명 이상이 함께여야 했습니다. 언니와 저, 동생까지 숫자를 맞춰 아는 보살님과 함께 백련암에 갔습니다.

성철 큰스님은 워낙 도인이라고 소문이 나 있어서 저는 흰 수염에 큰 지팡이를 짚고 있는 모습을 상상했습니다. 스님들께 철 스님 어디 계시냐?’고 물어도 답을 안 줘요. 알고 보니 바로 옆에서 포행을 하던 분이 바로 성철 큰스님이었습니다. 그냥 평범한 할아버지 모습을 하고 있어서 깜짝 놀랐습니다. 하하.”

김성림 회장은 백련암 룰에 따라 바로 삼천배를 시작했다. 2000배까지 하고 잠깐 쉬었다 다시 절을 했다.

“2600배 쯤부터는 안 아픈 곳이 없었습니다. ‘내가 왜 이 고생을 하지?’라는 생각과 함께 언니에 대한 원망이 밀려왔습니다. 그래도 끝까지 절을 해냈습니다. 그렇게 삼천배를 하고 나서부터는 백련암에서 절도 하고 기도도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김회장은 성철스님에게 법명도 새로 받았다.

삼천배를 몇 번하고 아비라 기도도 여러 번 했지만 저에게는 따로 법명을 주지 않으셨습니다. 그래서 하루는 제가 큰스님께 가서 법명을 내려달라 청을 드렸습니다. ‘그래? 그럼 종이하고 볼펜 가져와라고 하셨습니다. 그 자리에서 큰스님은 대지심大智心이라는 법명을 주셨습니다.”

 

김성림 회장은 백련암에 다니면서 불교관을 새롭게 정립했다. ‘불교의 핵심은 중도中道임을 가슴에 새겼다. 책으로 나온 성철스님의 가르침은 다소 난해했지만 직접 듣는 말씀은 너무 쉽게 다가왔다.

친정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셨고 시아버지도 결혼하고 얼마 후에 돌아가셨습니다. 그렇다 보니 큰스님께 더 의지를 했어요. 불교 관련한 것부터 사업에 대한 것까지 큰스님께 여쭈어보지 않은 것이 없었지요. 그때마다 큰스님은 명쾌하게 답을 주셨어요. 큰스님 말씀대로 하면 어긋나는 것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는 매일 1000배를 10년간 했고 매년 봄과 여름에는 매일 삼천배를 21일씩 했다. 매일 삼천배를 100일간 한 경우도 적지 않다. 백련암에 같이 갔던 언니는 매일 1만배 100일을, 여동생은 매일 삼천배 100일을 해냈다. 결국 김회장의 5형제와 그 자녀들까지 삼천배를 하지 않은 사람이 없을 정도로 가족 모두가 백련암 불자로 거듭났다.

제 큰 딸은 초등학교 5학년 때 일주일간 매일 삼천배를 했습니다. 초등학생 중에서는 아마 처음이었던 것 같습니다. 큰스님께서도 엄청 칭찬을 해주셨습니다. 아비라 기도나 삼천배를 할 때 아이들을 데려가면 큰스님께서 아이들과 놀아주셨습니다. 제 아들에게는 내가 니 친구다라고 할 정도로 절친이 되었습니다. 하하.”

그는 또 삼천배, 아비라기도, 참선과 함께 화엄경보현행원품 普賢行願品 을 수지독송했다. 물론 성철스님의 당부에 따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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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천하는 국제포교사회 만들 터

해인사 백련암에서 삼천배를 열심히 하던 어느 날 국제포교의 인연이 찾아왔다. 한 보살님이 도움을 요청했다. “큰스님 상좌스님 중에 한 분이 유학을 간다고 합니다. 큰스님께서도 흔쾌히 유학을 허락하셨다고 합니다. 우리가 조금 정성을 모읍시다.”

김회장은 그 후에도 몇 차례 더 장학금을 보내기도 했다. 김회장을 비롯한 신도들이 장학금을 보낸 그 유학생은 다름 아닌 원명스님이다. 원명스님은 이후 해외포교에 매진해 싱가포르 연화원, 인도네시아 해인사 포교원, 모스크바 달마사, 우즈베키스탄 정각사, 우크라이나 불심사, 키르키즈스탄 보리사, 방글라데시 원명사 등을 창건하는 등 다양한 해외포교 활동을 펼쳤다. 건강을 돌보지 않으며 해외포교에 매진하던 원명스님은 2003923일 해인사 청량사에서 열반에 들었다.

 

제가 원명스님을 직접 처음 뵌 것은 성철 큰스님께서 열반하셨을 때입니다. 큰스님 영단에 올릴 것이라며 귀한 향로를 가져오셨어요. 그때는 그냥 인사만 드렸습니다. 큰스님 장례를 마치고 인연이 돼 1995년에 스님을 모시고 백련암 불자님들과 함께 미얀마 성지순례를 갔습니다. 스님께서 순례 중에 스리랑카와 영국에서 유학했던 말씀을 하셨어요. 그때서야 원명스님이 제가 장학금을 드렸던 바로 그 스님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하.”

 

성지순례를 통해 신심 信心 이 단단해진 것도 큰 소득이지만 원명스님의 해외포교 원력을 확인한 것이 더 큰 보람이었다. 원명스님의 열정을 확인한 김성림 회장은 본격적으로 국제포교에 팔을 걷어붙였다.

서울에 있던 연등국제선원이 강화도로 옮길 때는 불사에 적극 동참했다. 원명스님이 세운 해외포교당 불사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단순한 후원자가 아니었다. 원력을 세운 이상 직접 국제포교사로서 현장을 누비기 시작했다.

김성림 회장은 한국불교는 세계화될 수 있는 조건을 충분히 갖추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우선 한국에 거주하는 외국인들 포교부터 시작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특히 국내에 많이 와 있는 동남아 불자들이 안정적으로 신행활동을 할 수 있는 시스템이 시급하다고 했다.

한국불교가 이주노동자들을 제대로 보살피지 못하면서 기독교로 개종하는 사례가 급증하고 있어요. 개종한 사람들이 자기 고향으로 가서 또 마을 전체를 개종시킵니다. 그래서 크고 작은 문제들이 생기고 있어요. 지금부터라도 우리가 면밀하게 살펴야 합니다. 국제포교사회에서 진행하고 있는 어린이 청소년 자타카 영어 암송대회는 물론이고 외국인 불자들을 대상으로 한 한국어 말하기 대회, 봄과 가을에 진행하는 한국문화체험, 부처님오신날 연등회 때의 연등 만들기 등을 좀 더 내실 있게 진행하면서 차츰 포교의 영역을 해외로 넓혀 나갈 것입니다.”

이와 같은 활동을 위해서는 다소 느슨해져 있는 국제포교사들의 활동력을 배가시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그는 강조했다.

국제포교사들의 연령대가 상대적으로 조금 높습니다. 사회에서 왕성한 활동을 했던 분들이 많아요. 그분들의 경험과 노하우가 국제포교에 반영되어야 합니다. 이제 잠재력을 폭발시킬 때가 됐습니다. 하하.”

 

성철스님, 원명스님의 국제포교 유업遺業을 이어 받은 김성림 회장. 국제포교사회 부산지부를 창립하고 ()불심홍법원 발기인 및 이사, 부산불교신도회 수석부회장, 조계종 중앙신도회 수석부회장 등 재가불자로서의 역할을 다 하면서도 작지 않은 회사를 직접 운영하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바쁘지만 어느 것 하나 허투루 하는 것은 스스로 용납할 수 없다고 했다.

최근 다소 지지부진한 모습을 보였던 국제포교사회가 김성림 회장과 함께 국내외에서 맹활약 하는 모습을 기대해본다.

백련암 불자들은 모든 일에 최선을 다합니다. 국제포교사회에서도 백련암에서 기도할 때와 같은 마음으로 정성을 다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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