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노래에 취하다] 슈베르트의 가곡 <봄의 신앙> >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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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232 2019년 04월호 [그 노래에 취하다] 슈베르트의 가곡 <봄의 신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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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맑은소리맑은나라 작성일19-04-26 16:19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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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이다! , 드디어 내복을 벗었다!

내복이란 건 한 번만 입어보면 절대 벗을 수 없는 마법의 옷 같다. 몇 년 전 겨울에 감기가 독하게 걸리는 바람에 아내의 성화로 내복을 입었다. 그 후부터 내복 없이는 겨울을 지낼 수 없게 되어버렸다. 마약보다 끊기 어려운 내복의 힘. 거기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봄이 찾아오는 것이다.

 

어릴 땐 볼이 빨개지다 못해 얼어붙을 정도로 나가서 놀았고, 젊을 땐 일부러 한 겨울 산행을 즐겼다. 배가 덜덜 떨리는 추위에도 자전거를 몰고 나갔다. 그때는 봄을 기다리는 심정을 이해하지 못했다. 겨울은 겨울대로 잘 놀았으니까. 그런데 내복의 신도가 되어버린 이후에는 봄을 기다리게 된다. 봄날의 부드러운 공기, 피어오르는 아지랑이, 곳곳에서 얼룩지며 터져 나오는 꽃무리. 그 속에서 마치 긴잠을 끝낸 듯 기지개를 켜고 나서 가벼운 옷차림으로 나서고 싶은 것이다.

 

꽃 무리처럼 터져 나오는 봄 노래들

 

이맘때가 되면 가요, 팝송, 클래식 할 것 없이 꽃망울 터지듯이 여기저기서 봄 노래들을 쏟아낸다. 가요에는 박인수가 부른 <봄비>부터 버스커 버스커가 부른 <벚꽃 엔딩>, 김윤아가 부른 <봄이 오면>, 루시드 폴의 <봄눈> 등 멋진 곡이 수없이 많다. 그중에는 내가 개인적으로 한국 가요 역사상 최고의 봄 노래라고 꼽는 곡, “꽃이 피면 같이 웃고 꽃이 지면 같이 울던 알뜰한 그 맹세에 봄날은 간다.”라는 가사를 가진 <봄날은 간다>도 있다.

한국 가곡으로 눈을 돌려보면 무엇보다도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로 시작하는 국민 가곡 <고향의 봄>이 있다. 그 외에도 봄이 오면 산에 들에 진달래 피네” “봄의 교향악이 울려 퍼지는 청라 언덕 위에 백합 필 적에” “봄 처녀 제 오시네, 새 풀 옷을 입으셨네등의 가사를 가진 가곡을 나열할 수 있다. 모두 심금을 울리는 옛 노래들이다.

 

서양이라고 해서 별반 다르지 않다. 그쪽인들 왜 봄을 기다리지 않았겠는가?

서양 고전음악으로 눈을 돌려보면 누구나 알고 있는 비발디 <사계> 중의 <>을 시작으로 모차르트 <봄의 갈망>, 멘델스존 <봄 노래> 등이 이어진다. 베토벤은 바이올린 소나타 5<>을 내놓았고, 요한 슈트라우스는 <봄의 왈츠>를 선보였으며, 슈만은 교향곡 1번에 <>이라는 부제를 붙였고, 스트라빈스키는 리듬으로 가득 찬 <봄의 제전>으로 세상을 놀랍게 했다. 말러는 <대지의 노래>에서 <봄에 술 취한 자>를 노래했고, 리하르트 슈트라우스도 생의 마지막에 쓴 <네 개의 마지막 노래>에 첫 곡으로 <>을 배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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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베르트, 봄을 기다린 작곡가

 

그러나 그 모든 봄맞이 명곡을 뒤로하고 오늘 선택한 곡은 슈베르트의 곡이다. <봄의 신앙> Frühlingsglaube1820년 슈베르트의 나이 스무세 살 때 쓴 곡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봄에 대한 믿음>이라고 번역하는 것이 맞겠다. 슈베르트는 다른 누구보다도 많은 봄 노래를 작곡했다. <봄에게> An den Frühling D.283, <봄의 시냇가에서> Am Bach im Frühling D. 361, <봄의 정령> Gottim Frühlinge D. 448, <봄에> Im Frühling D.882, 그리고 세상에서 가장 쓸쓸한 봄 노래인 <겨울 나그네>의 열한 번째 곡 <봄날의 꿈> Frühlingstraum D.911-11, 서른두 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 후에 모은 <백조의 노래>의 세 번째 곡 <봄의 동경> Frühlingssehnsucht D.957-3 등이 모두 슈베르트의 노래다.

그는 왜 이렇게나 많은 봄 노래를 지었을까? 그건 슈베르트의 삶이 너무 추웠기 때문이었으리라 짐작한다. 겨울이 추운 사람이 봄을 기다리는 법이며, 겨울이 힘든 사람이 봄을 노래하는 법이다. 슈베르트는 일생이 겨울이었다. 그의 별명은 슈밤메를(Schuwammerl)’, 즉 버섯이란 뜻인데 155센티도 안 되는 키에다 배불뚝이인 그의 모습을 빗댄 별명이다. 그 외에 술통’, ‘밀가루 반죽등의 별명도 있었다고 하는데 모두 그의 외모가 신통치 않은 데서 나온 것이다. 전해 내려오는 슈베르트 초상화들은 믿을 게 못 된다. 가장 확실한 자료는 슈베르트의 친구인 포글이 그린 캐리커처일 것인데 이것을 보면 그가 얼마나 작고 볼품없는 외모였는지 알 수 있다. 심한 근시여서 두 눈을 자주 찌푸렸고, 치아는 담배에 찌들었으며, 술을 아주 좋아했다. 게다가 살아 생전 음악가로 이름난 것도 아니었다. 그러니 친구들에게는 인기가 있었을지 몰라도 여인들이 관심을 줄 만한 인물은 결코 아니었다. 죽는 날까지 변변한 연애 한 번 못 해봤다. 슈베르트는 말했다. “내가 사랑을 노래하려고 할 때마다 사랑은 고통이 되었고, 고통을 노래하려고 하면 고통은 사랑이 되었다.”

 

결정적으로 슈베르트는 평생 가난했다. 정규 교사가 되는 시험에 탈락한 이후 집을 나와서 친구의 집을 전전하는 동안 제대로 된 직업을 가진 적이 없었다. 가정교사 직이나 성악 발표회의 반주자를 하긴 했지만, 정규적인 수입이라고 하긴 힘들었다. 그나마 벌어들이는 돈은 친구들과 술 마시고 노는 데 써버렸고, 결국 31세에 매독 합병증으로 세상을 떠나버렸다. 요절했다는 모차르트보다 4년이나 어린 나이로 죽었다. 그의 음악은 살아있을 때는 고사하고 죽은 후에도 한동안 인정받지 못했다. 아마도 작곡가 중에서 가장 혹독한 겨울의 삶을 살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니 슈베르트에게 봄 노래가 많을 수밖에 없지 않은가. 평생토록 인생의 봄날을 꿈꾸고 기다릴 수밖에 없지 않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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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우리는 봄을 믿어야 해요

 

 

슈베르트가 위대한 것은 그 겨울을 통과하는 동안 맥없이 웅크리고 있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는 600여 개의 예술가곡을 포함하여 거의 1천 개의 작품을 남겨놓고 떠났다. 이것은 진심으로 봄을 믿고 기다린 자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겨울이 드디어 끝나가고 바람결이 달라진 것을 느끼면서 슈베르트는 노래한다. “, 가난한 영혼이여, 아픔은 잊어버리자! 이제 모든 것이, 모든 것이 변해갈 거야.”

 

물론 슈베르트는 봄을 맛보지 못하고 겨울의 끝에서 세상을 떠났다. 그 대신 사람들의 가슴에 봄의 신앙을 심어주고 갔다. 그래서 나 또한 이 찬란한 봄꽃들을 보며 그가 남긴 노래를 듣는다. 먼 곳에서 슈베르트가 이렇게 말하는 듯하다. “, 여러분, 그래도 우리는 봄을 믿어야 해요. 겨울은 지나가요. 봄은 반드시 오고야 만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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