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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초대석

Vol.232 2019년 04월호 춘천 제따와나 선원장 일묵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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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맑은소리맑은나라 작성일19-04-29 17:44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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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전 처음으로 인도 순례를 가서 들른 쉬라바스티의 제따와나는 허물어져 흩어진 벽돌이 뒹굴던 앙상한 터에 불과했다. 세계 곳곳에서 온 수행자들의 기도 소리가 부처님 성지임을 짐작게 할 뿐이었다. 다른 대부분의 성지 역시 비슷했다. 처참하게 파괴된 인도불교의 현장을 보면서 만감이 교차했던 기억이다.

인도의 그것과 달리 한국에서는 제대로 된 제따와나 선원이 문을 열었다. 강원도 춘천시 남면 박암리에 위치한 제따와나 선원은 절의 외관은 물론 수행에서도 부처님 당시의 제따와나를 상상해 볼 수 있는 가늠자가 될 만한 곳이었다.

봄을 찾아 나서는 사람들 틈에 끼어 오랜만에 다시 찾은 제따와나는 사람들의 정진 열기로 여전히 뜨거웠다. 곧장 법당으로 가 부처님께 삼배를 올렸다. 인도 사르나트 박물관의 부처님을 빼닮은 부처님은 여전히 온화했다. 평소 20명이 넘는 사부대중이 정진하는 제따와나는 한국의 전통사찰과는 전혀 다른 형식으로 먼저 주목을 받았다.

 

한국에 다시 건설된 부처님의 제따와나

 

제따와나는 2009년 서울에 문을 열었다. 하지만 보다 수행에 전념하기 위해 201810월 춘천으로 옮겼다.

제따와나 선원은 부지 약 11570(3500), 연면적 약 1983(600) 규모로 법당과 선원, 수행자 숙소 등 전체 7개 동으로 구성됐다. 수행프로그램 진행 시 50여 명 정도를 수용할 수 있다. 특히 스님 숙소 8, 재가자 숙소 17곳 등 총 25곳의 숙소를 작은 선방 개념으로 조성해 선원에 머물며 수행에 전념할 수 있도록 했다.

제따와나 선원은 전통적인 한국사찰의 한옥과는 달리, 콘크리트 구조로 뼈대를 만들어 구조적 안정성과 단열 등 실용성을 제고하는 한편, 외장은 인도의 제따와나 유적지의 벽돌과 유사한 파키스탄 벽돌 약 30만 장을 사용했다.

하지만 건물 배치는 전통 사찰 형식을 따랐다. 도량은 높이가 4m씩 차이 나는 세 개의 단으로 나뉘어 있다. 일주문을 지나면 나오는 첫째 단에는 종무소와 공양간, 신도들이 수행하러 와서 머무르는 꾸티(숙소) 등이 있고, 둘째 단에 요사채, 셋째 단에 법당이 있다. 단을 오를수록 속세에서 멀어지고 부처님께 가까워지는 점층적 구조로, 기존 절의 구조와 다르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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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따와나 선원이라는 이름은 부처님이 가장 오래 머물렀던 기원정사 祇園精舍 의 원래 이름입니다. 근본 가르침을 따르고 당시의 모습을 닮아가려는 의지의 표현이죠.

우리 도량은 사성제 수행도량이라는 컨셉을 가지고 있습니다. 일주문도 좌우로 두 개의 기둥이 있습니다. 사성제를 의미하죠. 한쪽은 괴로움의 진리, 한쪽은 행복의 진리입니다. 일주문을 지나 법당에 이르는 길은 팔정도 八正道 를 의미합니다. 수행을 통해 열반으로 간다는 상징이죠. 법당과 선방은 교학과 수행이 함께 가야 한다는 의미를 담았습니다. 1층인 법당에서 교학을 배우고 2층의 선방에서 배운 바를 실천한다는 의미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건물 하나하나에 부처님 가르침을 온전히 녹아내려 한 제따와나선원장 일묵스님의 의지가 엿보였다. 일묵스님은 외형적인 면뿐만 아니라 수행 프로그램에서도 부처님 당시를 재현해 내고 있다. 일묵스님은 특히 제따와나에서의 중도수행을 강조했다.

 

중도中道는 팔정도八正道를 의미합니다. 팔정도는 바른 견해인 사성제와 청정한 계를 바탕으로 바른 삼매를 닦고, 바른 삼매를 기반으로 바른 지혜를 계발하여 바른 해탈을 실현하는 수행 방법입니다. 그래서 중도수행은 바른 견해를 기반으로 팔정도를 실천하여 사성제를 체득하는 수행입니다.”

 

제따와나의 수행 프로그램은 초심자과정, 기본과정, 고급과정, 심화과정 등 4단계로 이뤄져 있다. 초심자 과정은 괴로움을 바로 알고 수행에 임하는 바른 태도를 배운다. 기본과정은 고집멸도, 사성제를 배우고 삼매를 닦는 수행과정이다. 호흡을 기반으로 마음을 관찰하며 선정을 방해하는 탐진치 등 장애요소를 내려놓는 방법을 걷기수행, 마음관찰, 울력 등을 통해 체계적으로 익힌다.

고급과정은 집중수행이다. , 느낌, 마음, 법 등을 관찰하는 사념처 수행이 주를 이룬다. 심화과정은 모든 단계를 밟은 수행자가 선원장 일묵 스님의 11 지도로 12연 기를 관찰하는 훈련을 한다.

이와 함께 매년 하안거와 동안거 각 3개월간 집중수행도 진행하고 있다. 또 매주 수요일 정기법회와 매월 둘째 주 일요법회, 1주일 집중수행 프로그램도 운영하며, 선원 홈페이지(www.jetavana.net), 유튜브, 네이버 카페 등 온라인을 통해 불자들과 시민들을 위한 초기 불교대학도 운영한다.

 

교학과 실참이 어우러지는 도량

 

사실 일묵스님은 제따와나 선원 불사 이전에 세상 사람들에게 많이 알려져 있던 수행자다. 1996년 서울대생들의 집단 출가를 주도하면서, 또 선불교의 큰집이라고 할 수 있는 해인사 백련암에서 원택스님을 은사로 모시고 출가하면서 많은 화제를 몰고 다녔다. 하지만 정작 스님의 출가 이유를 궁금해 하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대학에 다닐 때 성철 노스님의 선문정로禪門正路를 통해 불교에 대한 눈을 떴습니다. 그 후 노스님의 다양한 법어집을 탐독하기도 했습니다. 그때는 불교보다 수학이 좋았기 때문에 박사과정에 입학해 계속 수학 공부를 했어요. 그러다 돌연 숨이 막히고 당장 죽을 것 같은 공포가 생겼어요. 지금 생각하면 요즘 말하는 공황장애였을 것 같습니다.”

27살 때의 경험으로 그동안의 공부지식이 죽음 앞에서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을 느꼈다. 또 죽음은 아무런 예고 없이 올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스님은 죽음에 대한 책들을 미친 듯이 섭렵하기 시작했다. 수많은 책을 보고 내린 결론이 불교였다.

불교에 진리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죽음을 이해하려면 윤회를 알아야 합니다. 죽음 자체가 두려운 것이 아니라 죽음을 이해하게 되면 어떻게 잘 살 것인가에 대한 관심을 갖게 됩니다. 저의 출가도 결국 이 과정이 이어진 것이 아닌가 합니다.”

 

스님은 윤회에 대한 말씀을 이어갔다. 출가의 이유가 된 죽음윤회로 이어진 것이다.

제따와나 선원을 개원하고 많은 사람을 만나면서 새삼 알게 된 사실이 한 가지 있습니다. 윤회를 믿지 않는 불자가 의외로 많다는 것입니다. 심지어 윤회는 부처님의 가르침이 아니라고까지 말하는 불교학자나 스님들도 있었습니다.

불교의 가장 중요하고 핵심적인 가르침인 연기와 사성제에 따르면 윤회하는 것은 괴로움이고, 윤회하지 않는 것이 괴로움의 소멸이라고 천명하고 있습니다. 더 나아가 윤회로 인해 생기는 괴로움의 원인은 탐욕, 성냄, 어리석음을 뿌리로 하는 해로운 마음이고, 괴로움을 소멸하려면 탐욕 없음, 성냄 없음, 어리석음 없음을 뿌리로 하는 유익한 마음을 계발해야 한다고 설하셨습니다.

이처럼 불교의 핵심적인 가르침은 윤회를 기반으로 설해져 있습니다. 따라서 윤회를 부정하는 것은 불교를 부정하는 것이고 그릇된 견해에 빠진 것입니다. 반면에 윤회를 이해하는 것은 불교를 바르게 아는 것이고, 바른 견해를 갖춘 것입니다. 바른 견해를 갖추어야 유익한 마음은 현생에서 행복하게 할 뿐만 아니리 내생에도 행복이 많은 세상에 태어나게 하고, 해로운 마음은 현생에서 괴롭게 할 뿐만 아니라 내생에도 괴로움이 많은 세상에 태어나게 할 것을 분명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런 바른 이해가 있어야 해로운 마음은 버리고 유익한 마음은 계발함으로써 괴로움을 소멸하고 진정한 행복인 열반을 실현할 수 있습니다.”

 

스님이 최근 펴낸 일묵스님이 들려주는 초기불교 윤회이야기를 보면 더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내용이다.

스님은 출가 뒤 범어사 강원을 졸업하고 봉암사 등 제방에서 수행했다. 이후 미얀마 파욱국제명상센터에서 3년간 공부한 뒤 프랑스 플럼빌리지, 영국 아마라와띠, 호주 보디야나, 말레이시아 담마난다까 등 세계 각지의 수행센터에서 계속 정진했다.

제가 수학을 전공해서인지, 처음엔 솔직히 간화선이 논리적으로 앞뒤가 안 맞는 것 같고 잘 이해되지도 않았습니다. 그런데 오히려 초기불교를 공부하고 나서 보니 선사들의 말씀이 상당히 깊이 있는 이야기로서 쏙쏙 이해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나라는 화두선 중심이 되면서부터 기초가 약해져 올바른 불교의 가르침이 쉽고 명쾌하게 전달되기 어렵습니다. 지금 한국불교에 시급한 것은 초기불교가 가지고 있는 기초토대를 잘 갖추는 것입니다. 그래야 우리가 갖고 있는 대승불교의 자산들이 더욱 부각되고 화두선도 살아남을 수 있습니다.”

스님은 한국불교 수행전통인 간화선을 부정하거나 비판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고 했다. 다만 분석적인 특징을 갖는 초기불교가 자신의 체질에 맞을 뿐이다.

인터뷰가 진행되는 동안의 핵심키워드는 사성제와 팔정도, 중도였다. 이에 대한 설명은 끝이 없었다. 사성제와 팔정도와 중도를 정확히 공부하고 실천하는 제따와나에 대한 비전도 명확했다.

성철스님은 허물어가던 한국불교를 다시 세우기 위해 1947년 봉암사 결사를 진행했다. 오직 부처님 법대로 살고 실천했다. 이제 성철스님의 손상좌인 일묵스님이 다시 부처님 법대로를 주창하고 실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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