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노래에 취하다] 슈만 연가곡 <시인의 사랑> 중 <놀랍도록 아름다운 5월에> >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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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233 2019년 05월호 [그 노래에 취하다] 슈만 연가곡 <시인의 사랑> 중 <놀랍도록 아름다운 5월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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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맑은소리맑은나라 작성일19-05-23 14:11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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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는
5! 온 천지가 푸른 옷을 갈아입어 쳐다보는 것만으로도 황홀하다. 이맘때만 되면 무슨 자동재생장치처럼 내 입에서 흘러나오는 노래가 있다. “임 분더 쇠네 모나트 마이…….”(놀랍도록 아름다운 5월에)로 시작되는 슈만의 연가곡 <시인의 사랑> 첫 곡이다.

 

노래는 정말 신기하다. 어떤 사람이 좋아하는 노래 목록을 보면 그 사람에 대해 약간은 짐작할 수 있게 된다. 게다가 노래는 나라마다 색깔 차이가 난다. 예를 들어 이탈리아 노래와 독일 노래는 그들의 민족 기질만큼이나 다르다. 나폴리 민요든 오페라 아리아든 이탈리아 노래는 가사를 몰라도 멜로디와 가수의 역량만으로 감동할 수 있다. 마리아 칼라스가 부르는 <정결한 여신>이나 루치아노 파바로티가 부르는 <돌아오라 소렌토로> 같은 곡이 모두 그렇다. 그에 비해 독일 가곡은 가사 내용을 모르고 들으면 도무지 심심하기 짝이 없다. 왜 그럴까?

 

가사를 가진 노래에는 말의 부분과 음악의 부분이 있다. 이탈리아 가곡은 음악의 부분에 치중했는데 비해 독일 가곡은 말의 부분에 방점을 찍어놓았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가사를 이루는 시의 내용을 모르면 가슴으로 느낄 수가 없게 되어있다.

반주의 역할도 마찬가지다. 이탈리아 가곡에서 반주의 역할은 노래 부르는 사람을 도와주는데 일차적인 목표가 있다. 그러나 독일 가곡, 특히 슈만(Robert Schumann, 1810~1856)의 가곡에선 반주가 노래만큼이나 중요해진다. 반주는 노래를 보조하지 않고 노래와 동등한 위치에서 이중창을 한다. 특히 노래의 뒷부분에 나오는 피아노의 독주 부분, 후주(postlude)’가 큰 역할을 한다.

 

말과 음악의 만남, 하이네와 슈만의 만남

 

이 곡의 가사는 독일의 시인 하인리히 하이네(Heinrich Heine, 1797~1856)가 쓴 시집에서 발췌한 것이다. 하이네는 독일 뒤셀도르프 출신으로 슈만보다 13년 먼저 태어났다. 서른 살 되던 1827년에 그동안 써놓은 시를 선별해서 <노래의 책>(Buch der Lieder)이라는 제목으로 출판했는데, 이 시집으로 엄청나게 유명해졌다. 열렬한 문학도이던 슈만은 하이네의 시를 읽고 너무나 좋아서 직접 찾아가 만나고 싶어졌다.

192858, 당시 18세의 젊은 슈만은 하이네를 만났고 그의 시 세계를 가슴에 담아 두었다. 이후 그 시집에서 노래에 어울릴만한 20개의 시를 골랐는데, 나중에 출판할 때 16곡으로 간추린 후 <시인의 사랑>이라는 제목을 붙였다.

 

슈만은 이 곡을 1840년에 작곡했다. 이 해는 슈만이 천재 피아니스트 클라라와 드디어 결혼에 골인한 해다. 클라라 아버지의 엄청난 반대를 무릅쓰고 법정 투쟁까지 간 후 우여곡절 끝에 결혼할 수 있었다. 가난한 작곡가 슈만은 이 아름다운 신부에게 해줄 수 있는 게 음악밖에 없었다. 그래서 정말 미친 듯이 작곡을 했다. 이 한 해 동안 그는 무려 169곡의 가곡을 만들었는데, <시인의 사랑> 외에도 <리더크라이스> <미르테의 꽃> <여인의 사랑과 생애>처럼 독일 가곡사에 한 획을 긋는 작품들을 모두 이 시기에 쏟아냈다. 슈만은 편지에 이렇게 썼다. “너무 기뻐서 웃다가 울다가 하면서 어쩔 줄을 모르겠어요. 선율과 반주는 나를 미치게 합니다. 하지만 클라라! 노래를 만든다는 것이 내게 얼마나 큰 행복인지 모릅니다.” “나는 이 가곡을 작곡할 때 늘 당신과 함께 있었습니다. 당신 같은 신부가 없었다면 절대 그런 음악을 만들 수 없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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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가곡집은 일반적인 사랑 노래만 있는 것이 아니다. 사랑에 달뜬 마음, 사랑의 충만감에서 시작하여 이별의 감지, 쓸쓸함, 질투, 자조, 절망, 추억, 회상으로 진행되는 사랑의 여정을 심리적으로도 완벽하게 포착해놓았다.

1<놀랍도록 아름다운 5월에>에선 설레는 감정으로 사랑의 시작을 얘기한다. 그 설렘은 이내 고독감이 된다. 2<나의 눈물에서 꽃이 피어나서>가 사랑에 빠진 자의 한숨을 노래한다. <장미, 백합, 비둘기, 태양>을 사랑하던 자신이 지금은 단 한 사람만 생각하게 되었고, <그대의 눈동자를 바라보노라면> 아무 생각 없어지며, 백합 꽃잎에 <내 마음을 적셔서> 그대에게 보내고 싶은 마음뿐이다.

여기까지가 사랑의 시작이라면 제6<거룩한 라인강에서>부터는 이별의 불안감이 감지된다. <나는 울지 않으리>라고 중얼거려보지만, 마음이 쓰려온다. <꽃이라도 이 마음을 안다면> 하소연하고 싶다. 그러나 <저 소리는 플루트와 바이올린>, 결국 사랑은 깨어지고 멀리서 그 사람의 결혼식을 알리는 음악이 들려온다. 사랑하던 사람이 부르던 <그 노래가 들려오면> 가슴이 미어질 것만 같다. 마치 갑돌이와 갑순이 이야기처럼 <한 총각이 한 처녀를 사랑했으나> 결국엔 서로 다른 사람과 결혼해 버렸다.

 

이제 12<맑게 갠 여름 아침에> 다시 옛 생각을 한다. 자는 중에 꿈을 꿨는데 <꿈속에서 내가 울고 있었다>. <밤마다 꿈속에서> 그녀를 만나지만 그것은 이미 <옛이야기의 나라>일 뿐이다. 그래서 시인은 생각한다. <옛날의 쓰라린 노래>들은 이제 땅에 묻어야겠다고, 하이델베르크의 술통보다도 더 큰 관을 짜서 거기에 옛 추억들을 묻어야겠다고 말하며 긴 이야기를 마무리 짓는다. 무려 2분에 걸친 피아노의 후주가 마지막을 장식하면서 연가곡이 끝난다.

 

불세출의 테너, 프리츠 분덜리히

 

이렇게 해서 하이네와 슈만의 시와 음악이 결합하였다. , 그러면 이제 남은 것은 연주의 세계다. 이 절절한 연가곡을 누가 어떤 식으로 부를 것인가 하는 문제만 남았다. 셀 수 없이 많은 성악가가 이 곡을 불러왔고 수많은 음반을 남겨놓았다. 이 중에서 어느 음반을 뽑아 들어야 할까? 고전적인 음반으로는 바리톤 디트리히 피셔-디스카우의 것이 있다. 그는 이 곡을 여섯 번이나 녹음했다. 그 외에도 제라르 수제, 토마스 크바스토프, 마티아스 괴르네, 크리스티안 게르하허 등의 바리톤 목소리가 줄지어 있으며, 테너로 눈을 돌려보면 페터 슈라이어, 이언 보스트리지 등의 음반이 있고, 자네트 베이커, 안네 소피 폰 오터 같은 여성 성악가 역시 이 곡을 사랑했다. 그러나 그 모든 음반 중에서 딱 한 장만 들어야 한다면 나는 역시 독일의 테너 프리츠 분덜리히(Fritz Wunderlich, 19301966)를 뽑을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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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덜리히는 1965년에 이 곡을 녹음했다. 35세의 전성기에 녹음한 이 음반으로 놀랍다는 뜻을 가진 이름 분덜리히처럼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 그러나 행복한 시간은 너무 짧았다. 이듬해 9월에 큰 공연을 앞두고 잠시 휴가를 떠난 그는 돌계단을 내려오다가 발을 잘못 디뎌 뇌진탕으로 급사하고 말았다. 세월이 흘러 이 곡을 녹음한 지 올해로 64년의 세월이 지났다. 그동안 수없이 많은 음반이 발매되었지만, 여전히 분덜리히의 녹음은 첫손가락에 꼽힌다. 하이네와 슈만이 만나 이 명곡이 태어났지만 그걸 가슴에 옮겨준 것은 분덜리히의 빛나는 목소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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