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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233 2019년 05월호 [영화 속의 직과 업] 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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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맑은소리맑은나라 작성일19-05-23 15:52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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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 중에 고등학교 국어 선생님이 있다
. 얼굴에 여드름이 있던 시절에 만난 친구라 무엇을 해도 그 시절의 개구쟁이 소년이 보인다.

이렇게 장난기 많은 녀석이 학교에서 엄격한 담임선생이란 게 믿어지지 않았는데, 우연히 본 친구의 뒷모습에서 그가 선생님이란 걸 느꼈다. 몇해전 모임을 마치고 헤어지는 순간, 앞서 가는 친구의 양복 윗도리 끝자락에 하얀 분필가루가 묻어있었다. 순간 학창시절 뵈었던 많은 선생님들이 생각났고, 어떤 소년들에게는 내 친구가 그런 선생님이란 걸 알게 됐다.

 

1교시 : 국어

 

영화 속 선생님들은 다양한 과목을 가르친다. 우선 내 친구와 같은 국어 선생님들부터 소개한다. 이 리스트에선 <죽은 시인의 사회>의 키팅 선생님이 맨 앞에 있다. 1989년에 이 영화가 한국에서 개봉했을 때 영화관에서 보고 울었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왜 눈물이 났을까? 의문을 품는 이유는 영화 속 학교와 내가 다녔던 고등학교는 엄청난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키팅 선생의 학교는 1859년에 설립된 전통있는 엘리트 학교였고, 나의 학교는 서울의 인구폭발에 떠밀려 급하게 만든 변두리 공립학교였다. 키팅의 학교는 졸업생 대부분이 미국의 최상류층으로 흘러 들어가지만, 나를 비롯한 우리 학교의 졸업생들은 1% 정도의 우등생을 제외하면 출세와는 거리가 멀었다. 우리들은 페인트공, 인쇄 노동자, 깡패, 웨이터, 노점상이 되었다. 시대도 달라서, 영화는 50년대 후반의 미국이었고, 나는 그로부터 30년쯤 지난 태평양 건너의 소국에 있었다. 이런 많은 차이에도 불구하고 왜 나는 눈물이 났을까?

키팅의 학교와 나의 모교는 많은 것이 달랐지만, 하지 말라는 것이 많은 것은 똑같았다. 그리고 키팅은 선생님들 중에 유일하게 가라, 하라, 봐라.” 고 충고하는 사람이었다. 그는 내가 보고 싶은 선생님이었다.

 

로빈 윌리엄스는 생전에 자신이 맡았던 많은 배역 중에 가장 좋아하는 캐릭터로 키팅 선생을 꼽았다. 이 영화에서 그는 교실을 연극무대처럼 사용하며 영문학으로 학생들의 영혼을 충격한다. 이 위대한 희극인은 자신의 농담을 비극적 현실과 매치시킬 때 엄청난 효과가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가 출연한 영화들은 결말에서 자주 비극, 패배로 달려간다. 그 과정을 따라가다 보면 우리는 웃다가 우는 상황이 된다. <죽은 시인의 사회>도 흥겹고 들썩들썩하던 초반의 활기는 현실의 장벽에 부딪혀 점점 무거워지고, 마침내 그와 제자들의 도전은 실패한다. 징계를 받고 학교를 떠나게 되는 키팅 선생. 쓰라린 실패 속에 영화는 키팅에게 단 하나의 성공만을 허용한다. 그것은 제자들의 존경이다.

<죽은 시인의 사회>의 마지막 장면은 유명하다. 떠나는 선생님을 위해 학생들은 책상에 올라가 서서 <오 캡틴! 마이 캡틴!>을 외친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다시 보니, 눈에 새롭게 들어오는 건, 일어서지 않은 학생들이다. 일어선 학생들이 9. 자리에 앉아있는 학생이 8. 모두 일어서게 하지 않고, 8명을 앉힌 것이 영화를 현실에 묶어놓아 감동을 높인다. 만드는 사람이 자신의 이야기에 지나치게 빠져있으면 이런 때에 모든 학생을 일으켜 세운다. 감독 피터 웨어가 참 노련하다는 생각이 든다.

 

다음은 2명의 여자 국어 선생님들을 보자. <위험한 아이들>의 미셀 파이퍼와 <프리덤 라이터스>의 힐러리 스웽크. 이분들은 키팅보다 상황이 훨씬 험악하다. 두 사람 모두 미국 캘리포니아주의 공립학교에 부임하는데, 학생들은 대부분 근처 빈민가에 집이 있고, 갱단과 마약에 노출되어 있다. 키팅의 학생들이 전부 백인 소년이었던 것에 비해, 이 두 영화의 학생들은 대부분 라틴계와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이다. 두 영화 모두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졌고, 두 영화 모두에 학생이 갱단의 총격으로 사망하는 사건이 나온다.

 

미국 서부도시의 거친 환경에서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여러 가지겠지만, 이 두 여자 선생님들은 글쓰기 프로그램을 제일 먼저 내민다. 글쓰기를 통해 학생들과 소통하고 그들이 환경을 극복할 수 있도록 돕는다. 미셀 파이퍼의 딜런딜런 콘테스트가 기억난다. 그녀는 시인 딜런토마스와 포크가수 밥 딜런을 비교하여 상징과 은유를 가르치는데, 학교의 높은 분들은 밥 딜런 같은 대중가수를 미국의 대표 시인과 나란히 놓는 것에 화를 낸다. 한참 후지만 밥 딜런의 노벨문학상 수상 소식을 들었을 때, 나는 이 영화의 장학사들이 생각났다. 노벨상 위원회가 얼마나 미웠을까?

 

이 두 분의 선생님들도 키팅처럼 주변의 반대와 의심에 시달리지만, 키팅과는 다르게 학교에 결국 남는다. 영화가 주는 어떤 메시지보다 선생님들이 아직도 거기에 학생들과 함께 남아있다는 사실 자체가 힘을 준다. 실화가 픽션보다 힘이 센 느낌이다. 또한 국어 과목 내에서 작문이 더 대접받았으면 싶고, 작문의 즐거움과 유익함은 현재의 논술 교육보다 더 큰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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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교시 : 음악

 

영화 속에서 국어 선생님만큼 많이 나오는 과목은 음악 선생님들이다. 최민식의 <꽃피는 봄이 오면>. 리처드 드레이퓌스의 <홀랜드 오퍼스>. 메릴 스트립의 <뮤직 오브 하트>. 제라르 쥐노의 <코러스>. 흥미로운 것은 영화 속 음악 선생님들은 모두 자신의 음악가 경력에서 실패한 사람들이다. 그들은 꿈꾸었던 음악가로서의 성취를 거두지 못하고, 임시직으로 음악 교사를 선택하지만, 아이들을 만나서 거꾸로 인생을 배운다.

 

영화의 도입부에서 음악 선생님들이 보여주는 모습은 쓸쓸하고 초라하다. 최민식은 테스트받은 교향악단에서 떨어지고 자포자기 마음으로 탄광촌 학교로 가고, 리처드 드레이퓌스는 출근을 위해 아침 7시에 일어나야 한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는 야행성 연주가였다. 메릴 스트립은 학교로부터 주차장을 배정받지 못한 임시교사여서 뉴욕시의 주차단속을 피해 가짜 번호판을 사용한다. 이런 장면들을 보면서 태어나면서부터 교사인 사람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교사도 학생처럼 배우고 만들어지는 존재다. 한편, 음악 선생님들이 나오는 영화는 OST가 좋아서 눈만큼 귀도 호강한다. 최민식의 트럼펫과 메릴 스트립의 바이올린을 감상할 수 있는 음반은 귀하다.

 

3교시 : 체육

 

<나의 펜싱 선생님>은 핀란드 영화이다. 1953년 구소련 연방에 속한 에스토니아의 펜싱 선생님 이야기다. 소재부터 모든 것이 색다른 영화지만 실화가 주는 묵직한 호소력과 아기자기한 드라마가 잘 붙어있어 재미있었다. 학생들과 도전을 함께한 대가로 이 선생님은 키팅 선생의 만 배쯤 되는 형벌을 받는다. 이 선생님은 소련의 강제 수용소로 끌려간다.

이 영화는 촬영 면에서 한 가지 특이한 것이 있다. 영화 초중반, 주인공 엔델 선생님은 유난히 뒷모습을 자주 보여준다. 카메라는 엔델의 뒤에서 그를 천천히 따라가는데, 도망자 신분의 엔델 선생의 마음으로 초대받는 느낌이다. 그러다 선생이 자신의 안전을 포기하고 학생들과 함께 레닌그라드로 간 다음엔, 카메라가 엔델의 뒤에서 앞으로 온다. 선생은 카메라의 정면에 서고, 그가 걸어가면 카메라가 뒤로 물러난다. 생각해보면 펜싱 경기장에서 선수들은 앞뒤로만 움직인다. 펜싱은 다른 종목과 달리 좌우 움직임이 금지되어있다. 그런 펜싱의 특별함을 카메라의 동선과 절묘하게 매치한 연출이 멋지다.

 

한편 선생님들은 영화 속에서 주인공이 아니라 조연으로도 자주 등장한다. 그런데 조연일 때 선생님들은 그렇게 멋있는 모습이 아니다. <인터스텔라>의 선생님들은 인류가 달에 갔다고 말하는 학생을 혼내는 관료들이고, <여인의 향기>의 선생님들은 부잣집 학생의 죄를 덮기 위해 가난한 학생에게 잘못을 뒤집어씌우는 죄인들이다. <패컬티>에선 외계인에게 신체를 가장 먼저 점령당해 학생들을 공격한다. <여고괴담> 시리즈로 넘어오면, 학교는 아예 공포의 공간으로 설정된다. 무엇이 학교와 선생님들을 이렇게 만들까?

 

국어 선생님인 친구에게 물어본 적이 있다. “힘든 일이 있겠지만, 그래도 교사는 보람 있지?” 친구는 잠시 생각한 뒤 말했다. “보람을 느낄 때도 있지만, 솔직히 요즘엔 헛되다는 생각이 든다. 존경을 바라는 건 아닌데, 사람들이 교사를 보는 시선이 우리 어릴 때하곤 완전히 달라. 학생들하고도 인연을 길게 보기 힘들다. 개인적으론 교과 과정에서 새로운 걸 시도하는 것이 여전히 막혀있고, 정해진 내용을 해마다 반복하는 것에도 지친다

 

그랬던가? 생각해보면 영화에서 주인공으로 나왔던 선생님들은 학교에서 외톨이, 반골, 이단 쪽이다. 영화 속에서 학교는 시대의 구습에 찌든 관료제의 말단조직으로 기능하며, 대부분의 교사는 기성체제를 위한 권위적인 보디가드처럼 행동한다. 주인공들을 가장 힘들게 하는 건 동료 교사들이었다.

매년 5월이 되면 스승의 날이 찾아오지만, 나에겐 찾아뵐 스승이 없다. 이런 처지에 고민하는 교사 친구에게 무슨 위로의 말을 하겠는가? 내가 답할 말을 찾지 못하고 우물거리자, 친구는 억지로 웃음을 보이며 거꾸로 나를 위로했다. “분필밥 먹은 지이제 겨우 20. 10년쯤 더 먹으면 뭘 좀 알 수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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