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실이데아] 고해苦海에서 벗어나는 10분 >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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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233 2019년 05월호 [교실이데아] 고해苦海에서 벗어나는 1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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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맑은소리맑은나라 작성일19-05-23 17:07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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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가 어떤 곳인가
. 배움을 따라가다 뜻하지 않게 함정에 빠져 배움 길에서 뒤처진 학생들에게 비정하고 매몰찬 곳이다. 교육과정을 따라가는 학생에겐 성취감을 주고 기회를 찾아가는 디딤돌이 될지 모르지만 말이다.

 

학기 초 수업하러 가는 길이었다.

복도에 덩치 큰 남학생이 한 남학생을 어깨 위에 걸치고 장난하는 모습이 보였다. 어깨에 매달린 학생은 고함을 지르며 허공에 발을 젓고 있었다. 그들 옆으로 갈 때까지 사냥 연습하는 수사자 새끼들처럼 장난에 몰입할 뿐이었다. 덩치 큰 학생의 어깨를 툭 치자 장난을 멈추었다. 어깨에 매달렸던 학생은 복도에 발이 닿자마자 교실로 사라져버렸다. 무시당한 기분이 들어 황당해할 때 죄송합니다.” 하는 소리가 들렸다. 요즘 학교 현장에서 학생들에게 듣기 힘든 죄송합니다.’ 하는 말을 듣고는 한 녀석이 달아난 것을 잊고 말았다.

 

죄송합니다.” 하는 참 반가운 소리의 주인공을 살폈다. 특대형 수박 크기 정도 되는 두상, 각진 사각 턱, 도드라진 광대뼈, 수염만 나 있다면 임꺽정이 따로 없었다. “죄송합니다.” 하는 말을 할 외모는 아니었다. 눈빛을 살폈다. 냇가에서 동무와 발가벗고 물장구치는 소년의 눈빛이었다. 눈이 마주치자 머리를 긁적이더니 고개를 숙였다. “됐다. 죄송한 줄 알면 됐다.” 하면서 수업할 교실로 들어가니 녀석이 뒤따라 들어왔다. 녀석은 교실 맨 뒷자리로 가 떡하니 앉더니 눈치를 보다 옆에 앉은 학생과 대화를 시도했다. 그 학생은 복도에서 어깨에 매달려 발버둥 치던 학생이었다. 지시를 무시하고 달아난 것을 따지려다 수업 진행 관계상 그만두었다. 한 학기 수업을 어떻게 진행할 것인지 소개해 나갔다. 두 녀석에게 시선을 고정하고 수업을 이어갔다. 녀석들은 저수지 둑의 빈틈을 노리는 물처럼 필자의 눈을 피해 잡담했다.

 

신학기가 시작되면 일부 학생들은 교사를 간본다. 교사를 자극해 보고 제지하는 정도를 시험한다. 그러면서 그 교사의 수업 시간에 자기가 행동할 범위를 정한다. 교사가 학생들 간 보기에 말려들면 그들이 연출자가 되는 지경에 이르기도 한다. 교사가 그런 학생들의 장단에 따라가면 다른 학생들의 학습권이 침해되고 만다. 녀석들을 그대로 둘 수 없었다. 초장에 다스려야 한다. 수업이 끝나고 녀석들을 교무실로 불렀다.

, 이름은 뭐꼬?”

죄송합니다하고 말한 학생에게 물었다.

강수환(가명)인데요.”

너는 이름이 뭐꼬?”

동구(가명).”

공부를 언제부터 멀리했지?”

 

대답 대신 동구는 수환의 등을 주먹으로 툭 쥐어박았다. 수환이도 기다렸다는 듯이 장난 모드로 돌입했다.

, 수환아, 니는 초원에 있는 코끼리다. 코끼리가 다람쥐처럼 복도에서 나대면, 복도가 내리 앉는다.” 하면서 수환의 팔을 잡았다. 성인 남자 종아리를 움켜잡은 것처럼 느껴졌다. “수업 시간에 선생님 잘 봐 도라(주라). 알것제.” 손을 내밀었다. 그러자 수환은 아래턱을 벌리며 씩 웃으며 손을 잡았다.

그 일이 있은 뒤 수업하기 위해 복도로 올라가도 수환이는 복도에서 동구를 어깨에 메고 장난치긴 마찬가지였다. 수환이는 필자의 모습이 보이면 장난을 멈추고 교실로 사라지기 시작했다. 수업 시간에도 집중하려고 노력했다.

 

사람이 확 달라지던가. 그만하면 됐다. 수환이가 누군가를 의식하는 것만으로 됐다.’ 동구는 눈빛에 약간의 적의가 흘렀다. 근육운동을 했는지 상체 근육이 우람했다. 수환이가 코끼리라면 곰 정도 됐다. 앞가르마를 타고 교복은 마다하고 사복을 입었다. 책상 위엔 교과서도 공책도 찾을 수 없었다. 수업 시간이면 필자의 눈을 피해 책상 째 들고 창가로 갔다가 다시 복도 쪽으로 옮겨다녔다. 복도와 교실을 멋대로 들락거렸다.

그것도 싫증 나면 수환에게 종이를 뭉쳐서 던지면서 장난을 걸었다. 수업 도중에 교실로 나타나기도 했다. 고개를 빳빳하게 들고 문을 열고 들어와 자기 자리로 털레털레 걸어가서 철퍼덕 앉았다. 그런 행동을 통해 필자와 다른 학생들의 주의를 끌려고 시도했다.

몸 근육, 옷차림, 머리 모양, 돌발행동으로 자신을 드러내면서 다른 학생들에게 나 이런 놈이야 하면서 다가가는 식이었다. 그런 동구의 노력에도 다른 학생들은 반응하지 않았다. 동구가 자기를 표현하는 방식은 이글거리는 태양 아래 반도막 난 촛불을 들고 불빛 좀 봐주세요, 하는 것 같았다.

 

동구의 수업 방해는 학기 시작한 지 두 달이 지날 때까지 그치지 않았다. 동구를 제지해야 했다. 학생들에게 책을 읽히고 복도로 동구를 불렀다. “운동 좀 했나? 나하고 씨름이나 한 판 하지.” 하고 말했다. 마른 체형인 필자를 보더니 피식 웃었다. “자신 있는 모양이제? 그라믄 한판 해보자.” 하는 말이 떨어지자 동구는 필자의 허리를 꽉 움켜잡았다. 필자를 단숨에 들어서 복도에 넘기겠다는 의지가 느껴졌다. 어깨를 맞대보니 뻣뻣하고 힘만 셌다. “됐나.” 하니 곧장 밀고 들어왔다. 몸을 틀며 앞무릎치기 기술을 구사하자 동구는 복도에 손을 짚고 말았다. 자기가 진 것을 확인하고는 필자를 올려다봤다. “한판 더 할까?” 하니 고개를 저었다.

복도에서 씨름 한판한 뒤 동구가 수업 중 수업 방해 공작을 펼치면 도옹구.” 하고 목소리를 낮게 깔았다. 그러면 동구의 수업 방해 동작이 멈췄다.

 

학생의 일은 학업이다. 학업을 포기한다는 것은 직장에 출근해서 일하지 않는 것과 같다. 수환이와 동구가 그런 처지가 된 기간도 상당하리라고 본다. 수환이와 동구도 초등학교 때는 수업에 참여했을 것이다. 글을 읽고 사칙연산까지는 하는 것으로 알 수 있다. 수업 수준이 높아질수록 불안해하면서도 따라가고자 노력했을 것이다. 스스로 공부와 멀어지고 뒤처지고 싶은 마음은 털끝만큼도 없었을 것이다. 공부와 멀어지면서 눈물도 흘렸으리라.

동구나 수환도 공부와 멀어진 사연은 있을 것이다. 그들의 억눌린 사연은 뚜껑만 열면 허공으로 튀어 올라 사방으로 터질지 모를 일이다. 가정환경, 지적인 면, 의지 부족 등을 하소연할지 모른다. 어쩌나! 시간은, 학교는, 교육과정은, 매몰차고 인정 없긴 마찬가진데. 동구와 수환이 소년처럼 지내는 동안에도 세월은 흘러갔다. 학업 능력은 떨어져 버렸다. 학업습관은 몸에서 사라져 버렸다.

 

고등학교 수업 내용은 어렵다. 중학교까지 제법 공부한 학생들도 아차 하다 나락으로 떨어진다. 동구와 수환이가 무정한 교실에서 무심한 책걸상에 앉아 수업을 듣는다. 한국말로 하는 수업이지만 무슨 내용인지 이해하지 못하는 수업을 듣는다.

수업 시간이면 교실이 고해苦海, 고통의 바다로 변하면서 목까지 물이 차오르는 기분을 느끼지 않았을까. 바닷물에 잠기지 않기 위해 허우적대다 온몸에 쥐가 내렸을 것이다.

수업 마치는 종소리가 울리면 수환이와 동구는 이제 살았구나뭍과 같은 복도로 나가자. 쥐 내린 몸을 장난으로 풀고 물속으로 들어가자.”하고 외쳤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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