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망을 다스리고 행복으로 가는 길 >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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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니법석

Vol.234 2019년 06월호 욕망을 다스리고 행복으로 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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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맑은소리맑은나라 작성일19-07-19 10:33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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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의 계율은 무엇을 기준으로 해서 나왔을까요. 계율은 성인聖人들이 일상생활하는 모습입니다. 성인들의 일상생활을 기록하고, 범부들이 생활하는 모습을 기록하여 보이는 차이점을 하지 말라고 합니다. 이는 성인들이 일상생활에서 실천하고 계신 것들을 실천하라는 뜻입니다. 우리 모두가 성인에게, 불보살님에게 한 발 한 발 다가가는 생활을 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계율을, 불보살님들의 생활을 그대로 실천하기는 힘듭니다. 몸도 마음도 힘들며, 우리의 업도 힘들어 합니다. 그렇게 힘듦에도 불구하고도 왜 해야 하는가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계율은 무언가를 강제하지 않습니다. 계율이란 예의범절과 같은 느낌입니다. 살생하지 마라, 폭력을 행사하지 마라 이런 내용에는 분노를 일으키지 말라는 내용이 담겨있습니다.

 

우리는 분노를 일으키는 습관이 있습니다. 이 분노의 에너지가 속에 쌓이며 정상수치를 넘어가고 있습니다. 이러한 분노에너지가 꽉 차 있는 상태에서 부처님 말씀을 따라 살생하지 마라, 화내지 마라고 하면 겉으로는 지킬 수 있으나 속으로는 많이 힘듭니다. 결국 오랜 시간 지킬 수 없습니다. 분노의 에너지가 속에 꽉 차 있으면 계율을 지키기 힘들어집니다. 억지로 지키려 하면 몸도 망가지고 정신적으로도 상처를 입게 됩니다. 이를 분출하게 되면 주변 인연들과 관계가 초토화됩니다.

이렇게 힘든 부처님의 계율을 어떻게 하면 지킬 수 있을까요?

 

먼저 기준이 무엇인지 측정합니다. 부처님의 삼귀의, 오계를 실천하는데 얼마나 힘든가, 불보살님들과 내 업의 거리가 얼마나 떨어져있는가 보는 겁니다.

마음을 안정시키면 분노에너지가 차분해지고 사람을 자비롭게 보는 마음이 높아집니다. 분노에너지가 없어지고 자비로운 마음이 높아진 상태가 되면 살생하지마라고 해도 힘들지 않습니다. 화를 내거나 남을 해치고 싶은 마음이 없습니다. 이런 상태가 되면 계를 지키기 쉽습니다. 그러나 화가 났을 때 혹은 상대적 빈곤감에 의한 고통이 클 때 우리는 조절이 안 됩니다. 그래서 우리 안의 불편한 에너지들이 일정 수준을 넘어가버립니다.

우리 몸에 염증이 일정 수준을 넘어 항생제 투여로 부족한 상태, 부처님 법을 받아들일 수 없는 상태가 되면 부작용을 안게 됩니다. 사회법에 의한 저촉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살생을 하면 당연히 사회법의 저촉을 받습니다. 그리고 위험한 사람으로 분류가 됩니다. 다른 사람 주머니에서 오천원, 만원 작은 도둑질을 합니다. 적은 금액이라 신고는 하지 않더라도 그런 사람을 내 곁에 가까이 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런데 우리 모두는 사랑받고 싶은 마음이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날 사랑해주지 않고 불편하게 생각한다면 행복할 수 있을까요?

어떤 사람은 화를 낼 이유가 많습니다. 마음이 좁고 시각이 좁아지면 화를 낼 일이 많습니다. 마음과 시각이 좁으면 화를 내는 일이 많은 것은 당연한 일이나, 그 화를 당하는 사람에게는 전혀 당연하지 않은 일입니다. 툭하면 화내고 분노에너지를 일으키는 사람을 가까이 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런 사람도 사랑받고 싶은 욕구는 있습니다. 그러나 사랑받지 못하기 때문에 심리적 공복감에 휩싸입니다. 심리적 배고픔이 지속되고 결국 한도가 넘어가면 자신을 포용해주지 않는 사회에 대해 공격적이 됩니다. 스스로는 화를 낼 이유가 있을지언정 행위의 인과는 본인이 원하는 결과를 만들지 못하고 점점 고립되어가는 상황을 만들게 될 것입니다.

 

계율이란, 부처님께서 이렇게 하면 좋다고 말씀해두신 사항입니다. 스님들이 생활하다 보면 계율에서 조금 벗어날 수 있습니다. 벗어난 순간의 행동이 범부의 행동입니다. 범부의 행동이 나오면 반성을 합니다. 제가 이런 행위를 했습니다, 반성을 하고 자신을 알아차리며 다시 정상적인 상태로 복귀합니다. 사과한 이후 복귀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가족과 친구, 이웃 사이에서도 부처님 계법을 의지한다면 서로가 서로에게 사과하는 방법을 공식화할 필요가 있습니다. 사과를 하면 사과를, 참회를 받아주는 것입니다. 참회를 받아주고 나면 일삼았던 행위에 대한 괘씸죄는 남겨놓지 말아야 합니다. 불제자들은 사과를 받는데도 수행이 필요합니다. 사회적으로 범죄를 저지를 경우 교도소에 다녀오고 죗값을 치르더라도 흔히 빨간줄이라 불리는 전과가 남습니다. 이것이 괘씸죄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상대가 사과하고 참회하면 이를 받아주고 용서해야 합니다. 용서하고 앞의 행위에 대한 기억을 지웁니다. 기억을 지우는 것도 수행입니다. 가족 사이에 사과하는 것도 수행이지만, 참회를 받아들이고 내 마음과 기억 속에서 지우는 것이 진정한 용서가 아닐까요? 진짜 참회는 다시 반복하지 않는 것입니다. 참회하는 사람은 다시는 반복하지 않겠다는 굳은 결심을 하며 참회합니다.

이를 받아주는 사람은 그 순간 행위에 대한 서운함과 기억을 지웁니다.

참회와 용서를 함으로 청정해졌습니다. 계율이 작동하는 자리에는 청정해질 기회가 있습니다. 계율이 없는 상태에서는 계속 괘씸죄가 남습니다. 10, 20년씩 괘씸죄가 쌓인다면, 지금 잘못한 사실이 없더라도 미움이 일어납니다. 괴로운 정이 됩니다. 우리가 함께 살아가는데 서로가 고통스러운 관계로 사랑해야할 이유는 없습니다.

 

분노에너지가 꽉 차서 나의 언행이 도를 넘어가지 않도록 소욕지족少欲知足을 생활화 합니다. 욕망을 크게 갖고 그 욕망을 충족시키면 행복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자신이 가진 역량만으로 충분히 욕망을 채울 수 없습니다.

욕망의 체계는 충족시키면 잠시 멈추었다 다시 커집니다. 어린 시절에는 만족할 수 있는 기회가 많이 있었습니다. 성인이 되어 한 번 충족되고 나면 욕망이 더 커집니다. 커진 욕망을 힘들게 충족시키고 나면 다시 또 커집니다. 그러한 과정의 반복을 통해 일정 수준이 지나면 더 이상 내 능력으로 나의 욕망을 충분히 만족시킬 수 없습니다. 잠시나마 만족하는 기회도 사라집니다. 만족이 없기에 사는 것도 재미가 없어집니다.

 

그럼 어떻게 하느냐, 욕망 주머니를 매일 조금씩 줄여가며 적응해가야 합니다. 조금씩 줄이고 적응하다보면 욕망하는 만큼 얻으려 하는 것과 필요한 만큼 얻으려 하는 것 중 무엇이 우리를 자유롭게 하는가 알게 됩니다. 욕망하는 만큼 추구하다 욕망과 내 능력의 간극이 커지면 만족하지 못하고 심리적 공복을 느끼게 됩니다. 결국 욕망과 능력의 격차만큼 자괴감을 가집니다.

그러나 욕망주머니를 조금씩 줄이고 적응하는 과정을 반복하다보면, 내 능력으로 충분히 채울 수 있는 상태가 됩니다. 스스로를 만족시킬 수 있는 상태가 되는 것입니다. 여기서 멈추지 않고 조금 더 줄입니다. 내 역량의 6~70퍼센트로 채울 수 있는 상태까지 줄이고 나면 3~40퍼센트의 여유가 생깁니다. 이 여유분이 바로 사람 노릇할 수 있는 여유입니다.

가족과 친구, 이웃에게 선심을 일으키지 못하는 것은 내 스스로의 욕망주머니조차 충족시키지 못했기 때문에 사람 노릇을 할 여유가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충족되지 못할 만큼 커다란 욕망주머니를 갖고 있으면 우리는 행복할 수 없습니다. 그렇기에 소욕지족, 욕망주머니를 줄이며 스스로 만족점을 만들어낼 수 있는 방향으로 천천히 전환해야 합니다. 전환하다보면 분노와 탐욕에너지는 적어지고 여유분을 가지고 사람 노릇을 할 수 있습니다.

사람 노릇을 하는 사람은 자비심이 일어날 가능성이 높아지고, 소욕지족하며 자기조절을 해낸 사람은 부처님이 일러주신 삶의 길로 나아가는 것이 쉬워집니다.

 

오늘은 계율을 활용하는 방법에 대해 말씀드리고 있습니다. 계율을 지킴으로 청정으로 돌아가 불보살님의 생활방식에 한발씩 다가갑니다.

행복지수는 만족을 하는 데서 나옵니다. 만족을 할 때 온 몸에 행복바이러스가 꽉 차게 됩니다. 그런데 만족점을 찍는 지혜를 잃어버렸습니다. 이는 욕망에 반응하는 것이 아니라 필요한 정도에 반응하고, 여유가 생길 때 나옵니다. 마음이 안정되고 에너지가 안정되지 않으면, 욕망의 에너지가 팽창하고 좌절을 겪으며 분노에너지가 발생합니다. 분노에너지가 팽창하고 그런 상태가 계속 되는 것이 당연하게 느껴지는 상태가 어리석은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 삶을 행복하게 만들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내가 소중히 여기는 가족들과 친구들과 함께 행복하고 싶어 합니다. 자기 역량으로 충족시킬 수 없는 욕망주머니를 키우고 욕망의 노예가 되어선 행복할 수 없습니다.

 

처음부터 계율을 지키는 것은 힘듭니다. 그러나 매일 내 생활이 불살생, 불투도, 불사음, 불망어, 불음주에 걸려들지 않기를 발원합니다. 또한 부처님께 귀의하고 법에 귀의하며 승가에 귀의합니다. 그래서 항상 깨어있고 미혹되지 않기를 발원합니다.

부처님에게 귀의하며, 또 법에 귀의하며 정지정견正知正見, 바르게 보고 바르게 듣고 바르게 생각하고 바른 습관을 들이기 위해 노력합니다. 청정과 화합을 뜻하는 승가에 귀의하며 화합하는 에너지를 냅니다. 다른 사람이 불화를 일으키고 싶어도 나는 청청한 길을 선택하고 화합하는 에너지를 냅니다.

불법승 삼보에 귀의하며 목표와 방향을 잡습니다. 인생의 목표와 방향을 잡고 조금씩 부처님과 불보살의 길로 나아갑니다.

 

계율을 처음부터 지키려 하다보면 힘든 시기가 찾아옵니다. 그러나 그 시기를 참고 익숙해지면 그만큼 당당하고 청정해집니다. 나 스스로에게 당당하고 가족과 친구, 이웃에게 당당해집니다. 당당함에서 높은 삶의 질이 따라옵니다. 반면 내 스스로가 당당하지 않으면 가족과 이웃에게도 당당할 수 없고 삶의 질 역시 낮을 수밖에 없습니다. , 계율을 지키며 힘든 시기가 오면 인내를 가지고 견딜 수 있는 만큼 유지합니다. 시간이 지나면 익숙해집니다. 그럼 조금 더 청정하게, 한 발 한 발 나아가다 보면 어느 순간 비범한 사람이 됩니다. 평범한 사람에서 비범한 사람으로 어느 순간 진입하게 됩니다.

 

비니법석 평등법회를 통해 마음을 잘 다듬고, 이 인연을 바탕으로 스스로의 욕망주머니를 잘 다스려 욕망이 아닌 필요에 반응하며, 미혹되지 않고 정지정견으로 살아가길 바랍니다. 항상 화합과 청정을 중심에 두고 부처님이 알려주신 계를 늘 돌아보며 어제보다 오늘, 오늘보다 내일 조금씩 더 부처님의 뜻에 가까이 다가가고 불보살님의 삶에 익숙해지길 바랍니다.

불보살님의 생활이 우리의 생활이 된 상태에서 기도를 하면 기도의 성취가 더욱 원만해질 것입니다. 모든 불자님들에게 이런 성취가 늘 이루어지길 발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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