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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234 2019년 06월호 [교실이데아] 교사의 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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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맑은소리맑은나라 작성일19-07-22 09:55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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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는 수업을 이고 산다. 수업만 없다면 교사는 할 만하다고도 한다. 수업이 없다면 교사는 무엇으로 살 것인가? 수업이 교사의 존재 가치다. 글을 쓰고 있는 지금은 토요일 오전 머리 한 곳에는 다음 주 수업을 어떻게 진행할까 고민하고 있다. 방학 때도 다음 학기 수업을 어떻게 할까 고민하긴 마찬가지다.

 

수업을 위해 길잡이가 필요했다. 초임 때는 대학시절 읽은 전공 서적에 매달렸다. 시간이 흘렀다. 교수방법도 시대 흐름을 무시할 수 없다. 그 뒤엔 최신 교수방법을 알리는 책을 의지했다. 수시로 원격 연수를 들으며 교수법을 익혔다. 원격 연수는 듣는 도중에도, 듣고 난 뒤에도 갈증이 남았다. 의문나는 점을 강사에게 질문할 수 없어서 그랬다. 그런 사정을 배려하듯 원격 연수 사이트에 질문을 받는 곳이 있다. 수강자가 댓글로 질문하면 답글이 달린다. 그 정도론 갈증을 달랠 수 없다. 입술조차 젖지 않는다.

 

방학 때는 갈증을 풀기 위해 집합 연수를 신청하고 연수원을 찾아다녔다. 연수원은 오아시스였다. 각 학교의 외로운 길잡이들이 연수원으로 찾아온다. 서로 무거워진 다리를 쭉 뻗고 걸어온 길을 이야기한다. 그러면서 기운을 되찾았다. 특히 겨울방학 연수는 프로 운동선수들의 동계훈련과 비슷하다. 프로 선수들은 동계훈련을 알차게 하면 경기에서 효과를 본다고 한다. 류현진 선수도 미국 프로야구 경기가 끝나면 국내로 돌아와 개인 트레이너까지 두며 훈련하는 것을 봤다. 겨울방학 동안 교재 연구하고, 연수에 참가해 교수방법을 익히고 나면 한 해 수업은 할 만했다.

 

작년 가을에 학생들에게 한 학기 책 한 권 읽기 수업을 진행하는 송승훈 선생님(경기도 남양주 강동고 국어교사)의 강의를 원격연수로 들었다. 강의를 들으면서 학생들에게 한 학기 동안 한 권의 책을 읽히고 서평이나 독서일지를 작성하게 하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송승훈 선생님이 경남교육연수원까지 강의 온다는 공문이 날아들었다. 강의를 신청했다. 그의 손짓, 몸짓, 표정을 보고 싶었다. 그의 성량, 억양, 어조 까지 듣고 싶었다. 그의 마음까지 느끼며 강의에 빠져들고 싶었다.

연수원에서 송승훈 선생님을 만났다. 그가 쓴 책을 내밀고 표지 뒷면에 서명을 받았다. 그리고 여섯 시간 동안 연수를 들었다. 강의 내내 송승훈 선생님을 개인 트레이너 삼아 가꾼 수업근육을 가꾸는 기분이 들었다. 연수를 듣고 나자 동계훈련 기간 동안 근육을 잘 가꾼 류현진 선수가 부럽지 않았다.

 

3 화법과 작문 수업을 맡게 됐다. 3 학생들은 대입 준비를 해야 한다. 현실은 문제집 풀이 수업을 외면할 수 없다. 양산서 창원까지 오가며 가꾼 수업근육을 포기할 수 없었다. 머릿속에는 문제집 풀이 수업과 학생들 삶을 가꾸는 수업이 줄다리기했다.

새 학기 수업 준비를 위해 문제집을 펼쳤다. 화법과 작문의 원리와 개념이 11쪽 정도로 요약돼 있었다. 화법과 작문 교과서 분량은 326쪽이다. 그런데 문제집엔 달랑 11쪽으로 요약해 놓은 것이 전부였다. 문제집 풀이 수업을 하면 문제 푸는 요령은 익힐지 모른다. 그러나 화법과 작문의 본질을 알고 실습할 수는 없다.

화법과 작문을 가르치는 이유를 돌아 봤다. 화법과 작문 교육과정 해설서를 찾았다. 화법과 작문을 배우는 이유는 학생들이 화법과 작문 원리를 익혀 원만하게 소통하며 괜찮은 삶을 살게 하는 것이라고 나왔다.

 

화법과 작문 교과서를 읽었다. 화법 관련 내용은 발표, 대화, 면접, 방송보도, 연설, 토의, 토론, 협상이 나왔다. 작문 관련은 안내, 보고문, 설명문, 기사문, 논설문, 비평문, 건의문, 광고문, 감상문과 수필, 회고문, 자기소개서까지 나와 있었다.

화법과 작문 교과서는 학생들이 화법과 작문의 본질을 익히고 학습활동을 통해 실습할 수 있게 돼 있었다. 시중에 나온 글쓰기 관련 책에 뒤떨어지지 않았다. 실용적인 면도 있었다. 대입을 위한 면접법과 자기소개서 작성법, 대학 다니는 동안 필요한 발표와 보고서 작성법, 성인이 돼서 사용할 연설, 발표와 논설문, 설명문 작성법 등을 아우르고 있었다. 화법과 작문 교과서를 잘 익히면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말과 글로 표현할 힘을 얻을 수 있다고 판단했다.

 

화법과 작문 첫 시간에 말했다.

너희들 수능 끝난 뒤 화법과 작문 교과서는 분리 배출장에다 버리지 마라. 화법과 작문 책만 잘 봐라, 그 안에 자기소개서 적는 법, 면접하는 방법 나온다. 교과서 다섯 번만 야무지게 읽어라. 그러면 논술문도 쓸 힘이 생길 거다. 대학 가서 실험하고 보고서도 쓰고, 혼인할 때 안내장도, 늙은 뒤 회고문 쓰는 힘도 생길 거다.”

예에~~~.”

학생들이 수긍하듯 대답했다. 다음 의도를 재빨리 이어갔다.

수행평가는 책 한 권 사서 읽고, 독서일지 열 편 쓰기로 하자.”

책까지 사란 말이에요?”

난 다른 사람들 집에 가면, 책장에 책이 있는지 둘러본다. 책장에 책이 없으면, 그 집 집값이 비싸고 인테리어 장식이 좋아 보여도 꼭 영혼 없는 몸 같아 보인다.”

글쓰기는 손, 엉덩이, 허리 근육을 키워야한다대학가려면 자기소개서 써야 하잖아? 글쓰기 근육이 없으면 곤란하다. 글 쓰다보면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힘이 생긴다. 감추고 싶었던 또 다른 나를 지켜보는 힘이 나온다. 못난 구석이 있었구나, 하면서 못난 구석 채우기도 한단 말이다. 소박하게 살아도 풍요롭게 살고, 군림한다고 거들먹거리는 녀석들을 애처롭게 바라보는 힘도 생기고,”

 

학생들은 수능이 끝나면 문제집과 교과서를 버린다. 교과서 외 책은 사지 않는다. 글쓰기라면 몸서리친다. 첫 시간 처음 만난 학생들에게 교과서 버리지 마라, 책 사고 글 열 편 쓰는 수행평가를 하자고 했다. 그것도 “~하지 마라, ~해라.” 하는 꼰대 용어까지 사용했다. 학생들은 거부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요즘 학생들은 상대의 의견에 타당성을 발견하면 수긍하고 태도가 변하는 면이 있다.

 

3월 둘째 주부터 학생들은 한 주에 한 번 책을 읽고 글을 쓴다. 수업 들어가기 전부터 학생들은 책을 읽는다. 반장이 교탁에 올려둔 독서일지를 읽으며 채점하고 첨삭하고 돌려준다. 30분이 지나면 학생들은 읽은 내용을 바탕으로 자기만의 느낌과 생각을 20분 동안 공책에 적는다. 학생들은 5월 셋째 주까지 여덟 편의 독서일지를 적었다.

근육량이 늘면 힘들게 들었던 아령의 무게가 가볍게 느껴진다. 더 무거운 중량을 찾는다. 학생들 글쓰기 근육이 강해졌다. 세 번째 독서일지부터 글의 분량이 늘었다. 첨삭하고 채점하는 시간이 길어졌다.

숨은 글쓰기 근육짱들을 발견했다. 그들이 쓴 글은 간결하면서도 내용은 알차고 재미있어 술술 읽혔다. 숨은 글쓰기 근육짱들은 학교 글쓰기 대표로 대회에 나간 적도, 교내 글쓰기 경시대회에서 상을 받은 적도 없었다. 문제집 풀이 수업을 했더라면 숨은 글쓰기 근육짱들을 만나지 못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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