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전에 푹 빠지다] 자비심으로 신의 나라에 이르길 - <삼명경> 세 번째 이야기 >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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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235 2019년 07월호 [경전에 푹 빠지다] 자비심으로 신의 나라에 이르길 - <삼명경> 세 번째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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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맑은소리맑은나라 작성일19-07-24 09:19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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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에 빠졌다면서 그 사랑하는 사람에 대해 아무런 설명도 하지 못하는 사람의 비유
(미녀의 비유)를 지난 호에 들려드렸습니다. ‘에 대해서 엄청나게 많은 이야기를 펼치고 있지만 정작 이 세상의 그 누가 신을 자기 눈으로 보았는지, 그리고 그 신에 대해서 합리적이고 객관적으로 말할 수 있는지를 부처님은 지적하였지요. <장아함경>에 들어 있는 <삼명경>에는 미녀의 비유에 이어서 두 번째로 사다리비유가 나옵니다.

어떤 사람이 빈 땅에 사다리를 세우고 있었습니다. 지나가던 사람이 물었지요.

무얼 하려고 사다리를 세우는 게요?”

위층에 올라가려고요.”

그런데 아무 것도 없는 빈 땅이었습니다. 나그네가 다시 물었습니다.

지금 그대가 올라가려고 하는 그 위층이란 것이 어디에 있소?”

사다리를 세우던 사내가 대답합니다.

잘 모르겠습니다.”

어떻습니까? 위로 올라갈 집도 없는데 올라가겠다고 사다리를 가져와 빈 땅에 세우려는 이 남자가 너무나 허망하고 진실 되지 않다고 느껴지지 않습니까?

첫 번째 미인의 비유와 두 번째 사다리 비유는 어디에 신이 실제로 존재하는지도 잘 모르면서 신을 잘 아는 것처럼 말하고 그에게 비는 어리석음을 풍자한 것입니다. 허망하다는 것이지요.

 

<삼명경>에는 다시 세 번째로 강을 건너는 비유가 등장합니다.

큰 비가 내렸는지 어떤 강에 물이 가득 차 있습니다. 그런데 이쪽 강 언덕에 몸이 단단히 묶인 한 남자가 있었는데, 이 남자는 강의 저쪽 언덕으로 건너가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온몸이 묶여 있는 터라 꼼짝도 하지 못하니 그저 저쪽 언덕을 향해 이렇게 외칩니다.

강기슭이여, 어서 와서 나를 건네주오.”

어떤가요? 이쪽 언덕에 몸이 묶인 이 남자가 저쪽 강 언덕에 대고 이렇게 외친다면 저쪽 강기슭이 이 남자를 건네주겠습니까? 그럴 일은 절대로 일어나지 않으리라는 것은 말할 필요조차도 없습니다.

세 번째 강을 건너는 비유에서 이쪽 강 언덕에 몸이 꽁꽁 묶인 남자는 몸과 마음이 집착에 단단히 얽매인 상태를 말합니다. 집착과 탐욕에 단단히 결박당했으면서 그것에서 벗어날 생각도 하지 않고 어디에 있는지도 잘 모르는 어떤 존재에게 나를 해탈시켜 달라고 비는 것이 부질없음을 비유하고 있는 것이지요.

강의 비유는 여기에서 멈추지 않습니다. 또 다른 비유로 이어집니다. , 어떤 사람이 강을 건너려고 할 때 손이나 발, 몸을 전혀 움직이지 않고, 또 배나 뗏목조차도 의지하지 않고 건너려고 한다고 해 봅시다. 과연 이 남자는 그 강을 건널 수 있을까요?

절대로 강을 건널 수 없을 것입니다. 반면 어떻게든 부지런히 힘을 써서 뗏목을 만들어 열심히 노를 저으면 강을 건너 저쪽 언덕에 안전하게 도달할 수 있겠지요.

이 이야기는, 당시 사제계급인 바라문들이 말하는 신의 세계에 태어나고자 한다면, 부질없이 기도만 할 것이 아니라 열심히 뗏목을 만들고 두 팔로 노를 젓듯이 노력해야 한다는 부처님의 생각을 전한 것입니다.

 

신이 있다, 없다를 증명하려는 것이 이 <삼명경>의 주제는 아닙니다. 어떤 문제를 얼마나 상식적으로 생각하느냐 그리고 행여 신이 존재하고 신의 세계가 있다고 믿는다면 빌기만 해서 그 세계에 갈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열심히 수행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그렇다면 부처님이 들려주는, 신의 경지로 나아가는 방법은 과연 무엇일까요?

어떤 사람이 부지런히 수행하고, 열심히 참선을 한다면 그는 자애로운 마음[慈心]으로 한쪽 방향을 두루 채우고, 다른 방향에도 그렇게 합니다. 그 마음은 널리 퍼져 끝이 없고 한결같고 한량없으니 원한도 없어지고 해치려는 마음도 없어집니다. 그는 이러한 마음으로 노닐면서 스스로 즐깁니다. 자애로운 마음[慈心] 뿐만 아니라 가엾이 여기는 마음[悲心], 함께 기뻐하는 마음[喜心], 담담한 마음[捨心]으로 한 방향을 두루 채우고 다른 방향에도 그렇게 합니다. 그 마음은 널리 퍼져 끝이 없고 한결같고 한량없으니 원한도 없어지고 해치려는 마음도 없어집니다. 그는 이러한 마음으로 노닐면서 스스로 즐깁니다.”

 

<삼명경>에서는 이렇게 하면 신의 경지에 이른다고 합니다. 부처님의 이 말씀은 저 유명한 자비심, 자비희사의 마음으로 세상과 이웃을 대하라는 것입니다.

자비희사에서 첫 번째 자 는 우정 어린 마음, 상대방을 내 벗으로 받아들이는 마음, 즉 자애심입니다. 두 번째 비 는 상대방이 힘들고 슬퍼하면 내 일처럼 함께 슬퍼하고 그를 안타깝게 여기는 연민하는 마음입니다. 세 번째 희는 상대방이 기쁘고 즐거우면 내 일처럼 함께 좋아하고 기뻐하는 마음입니다. 네 번째 사는 담담한 마음, 평정을 유지하는 마음입니다.

그러니 신이 있다, 없다를 따지기 보다는 우리 모두가 각자 자비희사 네 가지 마음을 품고 세상을 대하며 세상의 슬픔을 없애주고 세상을 행복하게 하려고 노력하면 이것이 바로 신의 경지에 이르는 길이라는 것이지요.

 

부처님은 다른 사람의 신앙을 빼앗는 분이 아닙니다. 그 사람이 자신의 신앙 속에서 성숙해가도록 안내하는 것이 부처님 방식입니다. 바로 앞에서 우리는 그걸 확인했습니다. 불교는 당신의 종교는 사이비이고, 미신입니다. 그런 것은 믿지 마십시오.”라고 이렇게 대놓고 말하기 보다는 만약 지금 당신이 어떤 종교를 가지고 있고 어떤 신앙을 품고 살아간다면 그 속에서 당신 스스로가 지혜를 얻고 성숙해가도록 진지하게 노력하십시오.”라는 입장입니다.

자비심은 불교의 대표적인 교리입니다. 하지만 법문을 듣는 대상이 누구냐에 따라서 이 자비심 법문은 신의 나라, 신의 경지에 도달하게 해주는 수행도 되는 것이지요. 이렇게 해서 <삼명경>은 끝이 났습니다. 신을 믿는 청년 두 사람은 이제 부처님 가르침대로 세상을 향해 자비심을 품고 그러면서 스스로 마음을 담담하고 평정하게 유지하는 수행을 하면서 살아가겠지요? 두 청년이 부처님 가르침을 듣고 진리의 눈을 떴다는 것으로 <삼명경>은 끝맺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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