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235 2019년 07월호 [화가가 들려주는 그림 이야기] 사막에 핀 꽃의 화가, 조지아 오키프
페이지 정보
작성자 맑은소리맑은나라 작성일19-07-24 14:06 댓글0건본문
'행복한 가정은 모두 엇비슷하지만 무릇 불행한 가정은 제 각각으로 불행하다.'
톨스토이의 소설 <안나 카레리나>의 첫 문장이다. 위로가 된다. 나만 불행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어쩌면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 불행은 늘 한 몸처럼 붙어 다니는 것인 지도 모른다. 행복해 지려면 어떻게 하는가 하는 질문이 생긴다. <행복의 기원> 저자 서은국 교수는 행복은 강도가 아니라 빈도라 한다. 한꺼번에 느끼는 것이 아니라 일상 속 조그만 것에서 느끼는 것이라고 한다. 짧게 살기 보다는 오래 살아 볼 일이다. 그만큼 행복을 느끼는 기회가 많을 테니깐.
화가의 삶을 보면 단명하는 경우가 많다. 오래 산 화가는 피카소 정도를 알고 있는데, 100년 가까이 살면서 불행과 행복이 교차하는 삶을 살다가 결국은 행복하게 떠나간 화가가 있다. 처음 인생은 뉴욕에서 그림을 그리다가, 후반기 인생은 뉴멕시코 산타페에서 살면서 그 곳의 풍경을 그린 화가 조지아 오키프이다. 조지아 오키프는 에더워드 호퍼와 더불어 미국의 대표적 화가이다. 20세기에 가장 중요한 한 명이면서 제대로 이해 받지 못한 예술가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남성 중심의 예술판에서 신화를 창조한 화가로 거듭나고 굴곡진 인생을 극복하면서 자신만의 예술세계를 이끌어 내었다.
오키프는 1887년 미국의 위스콘신 주 선프레이의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조부로부터 엄청난 재산을 물려받았지만, 유복한 어린 시절도 얼마가지 못했다. 아버지의 잘못된 결정으로 재산을 탕진하고 오키프의 가족들은 떠돌게 되었다. 고등학교를 3번이나 옮기고, 다른 주의 두 대학에서 공부를 했다. 유년시절 행복과 불행이 교차되는 생활을 겪은 것이다. 스무 살에 예술가가 되겠다는 작은 희망으로 시카고를 떠나 직면한 현실은, 생활을 위해 장시간 일하는 삽화가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초라한 모습이었다. 하지만 자신만의 예술을 위해서는 악마와도 거래할 수 있다는 욕심을 가졌기에 위대한 예술가가 되기 위한 노력을 멈추지 않았다.
‘내 머릿속에는 내가 배워 온 것과 다른 것, 즉 내가 이전에 표현해보지 않은 생각과 내 삶의 방식에 친근한 것이 있다. 나는 혼자이면서 전적으로 자유롭다. 알려지지 않은 나만의 것을 표현하기 시작했는데 그것은 다른 사람을 위해서가 아니라 바로 나 자신을 만족시키기 위해서였다.’ 오키프의 이러한 생각은 작품으로 표현됐고, 그 작품으로 오키프의 아버지뻘인 현대미술의 거물이자 유명 사진작가이며 뉴욕의 291화랑을 운영하는 스티글리츠를 만났다. 그와의 만남은 20세기 초반 남성들만의 영역인 미술계에서 작가로서 인정받을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1927년 23살 연상의 스티글리츠와 결혼을 했다. 사람들은 출세를 위해 늙은 남자에게 접근한 것이라고 했지만, 오키프는 아랑곳 않고 스티글리츠의 사진에 나타난 그래픽한 요소들을 자신의 회화에 접목하는 것으로 발전시켰다.
오키프는 꽃모양을 확대하여 화려하고 과감하게 그림을 그렸다. 유년시절 보았던 자연 속의 꽃이었다. 그러나 인기가 거듭 될수록 그녀의 의도와 상관없이 선정적인 쪽으로 몰아가는 해석이 나왔다. 남들과 다른 자신만의 방식의 그림들을 당대 남성 미술가들은 곱지 않는 시선으로 보았던 것이다.
‘화가란 세상에서 감동을 받을 수 있는 힘이 남아 있는 마지막 인간이다.’
운명적으로 만났던 스티글리츠로 인해 사랑을 하고, 또 그의 배신으로 심각한 우울증과 상처를 겪게 된다. 행복과 불행이 교차했다. 뉴욕을 떠나 뉴멕시코의 산타페로 거처를 옮기면서 오키프는 새로운 인생의 전환점을 맞이했다. 황량한 사막, 붉은 언덕과 기암괴석이 있는 풍경, 그곳에 뒹굴어져 있는 동물들의 앙상한 뼈 조각들이 자신과 닮아 있음을 느낀다. 괴로워서 찾아간 곳이 그녀를 구원하는 곳이 되었다. 오키프는 그곳에 집을 짓고 명상하듯 자신만의 그림을 그렸다. 사랑과 배신과 아픔을 주던 스티글리츠가 심장마비로 사망한 이후 그 곳에 정착하여 수도승처럼 자신을 다독이고 정갈하게 살았다.
1971년부터 오키프는 시력이 저하되기 시작했다. 주변의 세계가 점차 희미해져 힘들어졌지만 젊은 도예가 후안 해밀턴의 도움을 받아 그림을 계속 그릴 수 있었고, 서로에게 도움을 주는 관계로 발전했다. 시력의 약화로 인해 흙을 재료로 작업하기 시작했다. 때론 해밀턴의 도움으로 유화 작업의 끈도 놓치지 않았다. 불행과 행복이 반복되는 삶 속에서 오키프는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일을 계속하는 선택을 했다. 97세에도 여전히 칸딘스키의 <예술의 있어서 정신적인 것에 대하여>를 읽었으며, 98세에 젊은 연인인 해밀턴에게 전 재산을 상속하고 자신의 뼈를 페더널 정상에서 날려 보내고 영면을 했다.
100년이라는 긴 시간을 때론 현실의 모순과 싸우면서 고단하게 보냈지만, 자신에게 엄격하면서도 열정적으로 그림을 그려나간 오키프의 충실한 삶을 보면서, 행복과 불행은 늘 교차한다는 것. 타인보다 자신에게 집중한다면 행복이란 그리 먼 곳에 있지 않다는 것을 생각하게 된다.
<저작권자 © 맑은소리맑은나라,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