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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235 2019년 07월호 [교실이데아] 공개수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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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맑은소리맑은나라 작성일19-08-13 14:09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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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개수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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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개수업을 해야 했다. 공개수업 때는 교장, 교감, 동과목 교사, 타 과목 교사들이 참관한다. 부담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평소엔 학생들에게 수업을 공개하고 평가 받는다면, 그 자리는 동료들에게까지 평가받는 자리라 그렇다. 초임 때는 한 달 정도 공개 수업 준비를 했다. 경력이 쌓이면 부담이 줄어들 줄 알았다. 논어》 〈자한편子罕篇에 나오는 후생가외後生可畏란 말, 뒤에 난 사람은 두려워할 만하다는 뜻으로, 후배는 나이가 젊고 의기가 장하므로 학문을 계속 쌓고 덕을 닦으면 그 진보는 선배를 능가하는 경지에 이를 것이라는 말이 떠올랐다. 후배 교사들의 역량과 가능성을 보면 뿌듯함과 두려움이 엇갈렸다.

 

겨울방학 때 공개수업 준비에 들어갔다. 주제는 시 쓰기를 통해 자기의 생각과 감정을 정리하고 표현할 수 있다.”로 정했다. 교과 진도를 고려해 6월 중순에 공개수업할 것이라 공개수업 담당교사에게 말했다.

시 쓰기 수업을 한 교사들이 쓴 책을 다섯 권 구입해 읽었다. 그 중에 세 번 이상 읽은 책이 있다, <지금 여기 나를 쓰다>(이상석 저, 양철북출판사)란 책이다. 저자가 35년 동안 교단에서 학생들에게 글쓰기 교육한 사연을 담았다. 책 구성은 학생들이 왜 시 쓰기를 해야 하는지 이유를 먼저 밝힌다. 다음은 그 이론을 바탕으로 학생들이 쓴 시를 보여주고 그 시가 나온 사연을 전한다. 시가 나온 사연을 읽다보면 절로 코끝이 찡해지면서 눈물이 찔끔 흐르기도 했다. 저자는 시 쓰기 수업을 통해 학생들이 성장한 사연을 전하면서 책은 끝이 난다. 마지막장을 덮고 가슴이 뭉클했다. 읽고 감동하면 뭘 하나 실천해야지, 하면서 공개수업은 시 쓰기 수업으로 꼭 하겠다고 다짐했다.

 

5월 말 시 쓰기 수업을 하는 이유, 다른 학교 학생들 시, 우리학교 학생들 시를 소개한 학습 자료를 만들었다. 만들고 보니 A4용지 열세 장이었다. 6월 초 수업에 들어갔다. 학습목표를 말했다.

시를 쓴다고요오~~?”

그 한 마디에는 학생들의 시 쓰기에 대한 편견이 도사리고 있었다.

시 써 본 적 있는 사람 손들어 봐라?”

서른 명 정도 되는 학생 가운데 대여섯 명이 손을 든다.

놔나주는 프린트 보모 시를 쓸 수 있을 끼다.”

그래도 학생들은 자신이 없는 눈빛으로 고개를 흔들기만 했다. 학생들이 시를 쓴다는 말에 부담을 느끼는 것을 알았다.

그라지 말고 프린트 6쪽 함 펴 봐라. 다 같이 읽어보자.”

학생들이 프린트를 뒤척이는 소리가 들렸다. 다 같이 읽기 시작했다.

 

담배

항상 같은 길을 가는 친구

나랑 제일 가까운 친구다.

슬프거나 힘들거나 화 나거나

나는 항상 너를 찾는다.

 

너에게 배신감을 느낀다.

담배야 이제 내 인생에서

사라져 줄래?

 

담배

호기심에 만난 담배

익숙해진 담배

습관처럼 찾는 담배

답답하고 스트레스가 찾아들 때

찾는 담배

 

담배를

꺼내 입에

하나 물어 불을 붙이고

인상을 찌푸리며

연기를 내뱉으며

 

담배 연기에 하는 말

 

두 편의 시를 읽고 나자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던 학생들이 이 시 누가 썼는데요?”하고 호기심을 보였다. 그 시가 나온 사연을 전했다.

시를 쓴 선배들 이름은 말할 수 없다. 말썽깨나 부렸지. 담배 소지하고 있다가 적발되고 학생부로 가게 됐거든, 그러니까 화가 나서 내가 있는 줄도 모르고 적발한 선생님 욕을 하고 있데, 그러다 나하고 눈이 마주쳤단 말이야. 어쩌겠노. 나도 덩달아 화낼 수도 없고, 그때 벌로 시를 한 번 쓰라고 했더니, 한 시간 만에 써 왔더라. 내가 약간 손 봤고. 공부하고 엄청 안 친한 선배들이 시를 썼단 말이다. 너뜰도 시 써것제?”

학생들은 공부하고 전혀 친하지 않는 선배들이 시를 썼다는 말에 자신감을 얻은 듯 연필을 쥐고 시를 쓰기 시작했다. 20분 정도 지나자 체육과에 진학하길 희망하는 학생이 선생님 시 다 썼는데요.” 하면서 손을 들었다. “그래, 쓸 수 있다고 안 했더나. 가져와 봐라. 친구들 앞에서 함 읽어봐라.”

 

중학교 때 말썽깨나 부렸다.

어머니 마음에 못을 박는

철없는 짓을 했다.

 

다행히 일찍 그것도

많이 맞아

정신 차렸다.

 

요즘 동생이 꼽다.

밤늦게 집에 들어오고

어머니에게 대들고

돈도 막쓰고

 

처음으로

동생을 전나 패고 싶다.

 

그러면

철이

들란지

 

시를 다 읽고 나자 급우들이 ~”하면서 엄지를 비스듬히 치켜들고 격려했다. 학생들은 시를 통해 동생한테 마음을 열어준 친구를 다시 본 것이다. 자신의 삶을 당당히 드러낸 친구를 응원한 것이다. 사춘기를 보내는 동생의 철없는 행동을 멈추길 바라는 마음을 담은 시였다. 자신이 철없던 시절 방황을 일찍 끝낸 경험을 떠올렸다. 맞아서 철이 든 것을 기억했다. 동생

의 철없는 행동에 속을 태우는 어머니 보기도 안쓰럽다. 동생을 때린 적은 없었다. 그런데도 때려볼까 고민한다. 동생도 맞으면 자신처럼 방황을 끝낼까 하고. 동생을 사랑하고 어머니를 위하는 학생의 마음이 따뜻하기만 하다.

 

다음은 공개수업을 끝낼 때 한 말이다.

방탄소년단만 노래를 부릅니까? 여러분도 동네 노래연습장을 찾아 노래를 부릅니다. 친구의 노래를 들으며 박수도 칩니다. 친구가 방탄소년단의 노래를 부르며 감정을 정리하고 표현하는 모습에 찬사를 보내는 것입니다. 손흥민 선수만 축구장을 누비는 것은 아니잖습니까? 여러분도 초산축구장을 찾아 축구화 끈 동여매고 골대를 향해 내달려 슈팅 때리잖습니까? 날아간 공이 그물을 출렁이면 양 팔을 치켜들고 운동장을 달리잖습니까?

시인만 시를 써야 합니까? 가수가 되기 위해, 축구 선수가 되기 위해, 노래하고 축구하는 것은 아닙니다. 노래 부르면서 감정을 다스리고, 축구 하면서 몸을 다스리는 것입니다. 시 쓰면서 여러분의 생각과 감정을 가꾸기 바랍니다. 노래연습장에서 노래하고 초산구장에서 축구하는 열정만 있으면 여러분의 생각과 감정을 붙든 시를 쓸 수 있을 것입니다. 시를 쓰면 여러분은 세상의 터무니없는 잣대에서 벗어나 여유 있는 삶을 사는 힘이 생길 것입니다. 졸업 후 시를 쓰고 모여앉아 여러분이 쓴 시를 두고 합평하면서 유유자적하는 멋도 만들어가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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