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노래에 취하다] 조르주 비제 <카르멘> 중에서 사랑은 반역의 새 >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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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236 2019년 08월호 [그 노래에 취하다] 조르주 비제 <카르멘> 중에서 사랑은 반역의 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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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맑은소리맑은나라 작성일19-08-16 14:10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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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인의 심장을 겨눈 여인들이 있다
. 시대의 질곡 때문이거나 타고난 미모 때문이거나 아니면 자유로운 영혼 때문이거나, 아무튼 이 여인들은 연인을 위험에 빠트린다. 이른바 팜므 파탈(Femme fatal)이라 불리는 치명적인 여인들이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메데아는 그 전형을 보여준다. 아르고호의 영웅 이아손에게 반해 아버지와 나라를 배신하고 그에게 황금 양털을 건네주었다. 그러나 모든 것을 걸어 사랑했던 이가 변심하자 그녀의 사랑은 지옥의 불길에 휩싸여 모두와 함께 파멸의 길로 간다. 이 지독한 비극을 소재로 만든 오페라가 케루비니의 <메데아>였다.

 

기독교의 구약 성경에 나오는 유명한 팜므 파탈은 델릴라와 살로메가 있다. 이스라엘 최고의 장군이던 삼손은 델릴라의 품 안에서 그의 모든 비밀을 털어놓게 되고 그 결과로 장렬한 죽음을 맞이한다. 그 이야기가 작곡가 생상스의 손에서 오페라 <삼손과 델릴라>로 태어났다. 7개의 베일을 걸치고 고혹적인 춤을 춘 다음, 춤의 보답으로 세례 요한의 목을 달라고 한 여인도 나온다. 작곡가 리하르트 슈트라우스는 그 여인의 이야기로 오페라 <살로메>를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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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페라가 만든 불멸의 캐릭터 카르멘

 

187533일 파리 오페라 코미크 극장,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신세대 팜므 파탈이 여주인공으로 된 오페라가 막을 올렸다. 프랑스의 소설가 프로스페르 메리메(Prosper Mérimée, 1803~1870)의 소설 <카르멘>을 원작으로, 메이약과 알레비가 대본을 만들고 조르주 비제(George Bizet, 1838-1875)가 곡을 써서 탄생한 새로운 캐릭터가 바로 <카르멘>이었다. 그녀는 신화 속에서 온 것도 아니고 성경에서 나온 것도 아니었다. 공주나 귀부인도 아니었고, 어마어마한 미모를 가지지도 않았으며, 이상과 야심에 불타는 사람도 아니었다. 유럽으로서는 오지나 다름없는 스페인의 안달루시아, 거기서도 이방인이자 최하층 집단인 집시 무리에 속했다. 그 이전의 프랑스 오페라에서는 등장할 수 없는 주인공이 설정된 것이다.

 

1820년경 스페인 세비야, “사랑은 들새와 같은 것이라고 말하는 집시 여인 카르멘이 있었다. 그리고 그녀에게 홀딱 빠져 어떻게 사랑이 변하니?”라고 묻는 순진한 군인 호세가 있었다. 그때까지 프랑스 오페라들은 사랑에 상처받고 고통당하는 순진녀들의 이야기가 대부분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사랑은 들새와 같아, 아무도 날 길들이지 못해. 나는 절대로 얽매이지 않을 거야, 내가 사랑할 때면 당신은 조심해야 할 걸이라고 당차게 노래하는 집시 여인이 등장한 것이다.

담배 공장에서 퇴근한 카르멘은 다리를 벌리고 앉아 담배를 피우다가 이 노래를 부른다. 쿠바에서 넘어온 춤곡 리듬을 가진 노래라서 흔히들 카르멘의 아바네라’(habanera)라고도 부르는 곡이다. 가사 첫머리에 rebelle(반역)이라는 단어를 l’amour(사랑)이라는 단어와 연결해놓았다.

이 노래를 통해 카르멘은 자신이 어떤 여인인지 보여주기 시작한다. 그녀는 세관원에게 잡혀서도 노래를 부르며 트랄랄랄라, 나를 죽여 봐, 불태워 봐!”라고 받아치고, 순진한 군인 호세를 꼬드겨서 도망친다. 다시 투우사 에스카미요에게 빠져 호세를 배신하고 그를 절망의 구렁텅이에 몰아넣는다. 호세가 마지막으로 죽음으로 협박하며까지 사랑을 호소해보지만, 그녀는 이렇게 노래를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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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르멘은 거짓말을 하지 않아. 내 마음은 이미 결정 났어. 나와 당신 사이는 모두 끝났어. 내 최후가 다가온 것을 잘 알고 있어. 당신이 날 죽이려 한다는 것도 잘 알고 있어. 하지만 내가 죽든 살든 당신에겐 굴복하지 않아. 난 당신을 더는 사랑하지 않아. 카르멘은 절대로 굴복하지 않아. 난 자유롭게 태어났고 자유롭게 죽을 거야!”

 

<카르멘>은 당시의 통념과 전혀 다른 한 여인을 통해 기존의 가치관을 전복시킨다. 이제부터 여인들은 호락호락하지 않게 된다. 눈물로 밤을 지새우는 청순가련형 역할에서 벗어나서 남자들을 쥐락펴락하는 역할의 문을 열게 된다.

오페라 <카르멘>은 이러한 새 여성상을 제시했을 뿐 아니라 집시의 관능적 매력과 스페인의 이국적 정취까지 더해놓았다. 무엇보다 비제의 음악적인 힘에 녹초가 된다. 이 곡 외에도 세기딜랴’ ‘꽃노래’ ‘투우사의 합창등 곡 중에 나오는 아리아와 합창들이 어느 하나 버릴 것 없다.

 

<카르멘>을 들은 철학자 니체는 이토록 처절하고 비극적인 오페라를 들어본 적 없다라며 극찬했고, 차이콥스키도 언젠가 이 오페라는 반드시 세상을 정복하고 말 것이다라고 했다. 그러나 기존의 프랑스 청중은 너무나 이질적인 캐릭터와 스토리에 당황했고 불쾌해했다. 결국, 오페라는 3개월 만에 막을 내렸고, 건강을 크게 해친 비제 역시 초연한지 3개월 만에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불행히도, 또는 다행히도 비제가 죽자마자 <카르멘>의 주가는 급등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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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사라사테와 왁스만은 이 오페라의 선율을 따서 <카르멘 환상곡>을 만들었고, 호로비츠는 <카르멘 변주곡>, 부조니는 <카르멘 판타지>를 작곡했다. 영화의 시대에 들어서자 카르멘은 최고의 영화 주인공이 되기도 했다. 1915년에 세실 드밀이 무성 영화로 <카르멘>을 만든 이후, 오스카 헤머스타인이 뮤지컬로 <카르멘 존스>를 만들었고, 카를로스 사우라 감독은 플라멩코 버전의 영화 <카르멘>을 만들었으며, 프란체스코로시 감독은 도밍고와 미헤네스를 캐스팅해서 영화 오페라 버전으로 <카르멘>을 만든 바 있다.

유튜브에는 도밍고와 미헤네스가 부르는 카르멘의 아리아들을 비롯하여 마리아 칼라스, 아그네스 발차, 프레데리카 폰 오터, 안나 카테리나 안토나치, 안젤라 게오르규 등 수많은 명창의 목소리가 줄지어 기다리고 있다.

예나 지금이나 치명적인 여인의 유혹은 거부할 수 없는 매력이 있다.

달리 치명적이라고 표현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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