大方廣佛華嚴經 卷第三十五 十地品 第二十六之二 正宗分 八, 第二離垢地 3/3 > 무비스님 화엄경 강설 염화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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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비스님 화엄경 강설 염화실


무비스님 화엄경 강설 염화실

2019.08.Vol.121 大方廣佛華嚴經 卷第三十五 十地品 第二十六之二 正宗分 八, 第二離垢地 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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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맑은소리맑은나라 작성일19-08-05 09:11 댓글0건

본문

 8, 正法勤修

菩薩이 如是觀察了知已하고 倍於正法에 勤求修習하야 日夜에 唯願聞法하며 喜法하며 樂法하며
依法하며 隨法하며 解法하며 順法하며 到法하며 住法하며 行法이니라 菩薩이 如是勤求佛法호대 所
有珍財를 皆無悋惜하야 不見有物이 難得可重이요 但於能說佛法之人에 生難遭想하나니 是故로
菩薩이 於內外財에 爲求佛法하야 悉能捨施호대 無有恭敬을 而不能行하며 無有憍慢을 而不能
捨하며 無有承事를 而不能作하며 無有勤苦를 而不能受니라

“보살이 이와 같이 관찰하여 알고는 바른 법을 배로 부지런히 닦으며 밤낮으로 원하
기를 ‘법을 듣고, 법을 기뻐하고, 법을 좋아하고, 법을 의지하고, 법을 따르고, 법을
이해하고, 법을 순종하고, 법에 이르고, 법에 머물고, 법을 행하여지이다.’라고 하느
니라.
보살이 이와 같이 불법을 구사하면서 가진 재물을 하나도 아끼지 아니하고, 어떤 물
건도 희귀하고 소중한 줄로 보지 아니하며, 다만 불법을 말하는 사람을 만나기 어렵
다는 생각을 내느니라.
그러므로 보살이 안의 재물과 바깥의 재물을 불법을 구하기 위하여 모두 버리며, 어
떤 공경도 행하지 못할 것이 없고, 어떤 교만도 버리지 못할 것이 없고, 어떤 섬기는
일도 행하지 못할 것이 없고, 어떤 고생도 받지 못할 것이 없느니라.”
 
*
정법근수(正法勤修) : 정법을 부지런히 수행하다
*
보살(菩薩)이 : 보살이 
여시관찰요지이(如是觀察了知已)하고 : 이와 같이 관찰하고 요지하고 나서
배어정법(倍於正法)에 :배어정법에 대해서
근구수습(勤求修習)하야: 부지런히 닦는 것을 구해서
일야(日夜)에: 밤낮으로
유원문법(唯願聞法)하며: 오직 법 듣기를 원하며
희법(喜法)하며: 법을 기뻐하기를 원하며
낙법(樂法)하며: 법을 즐겨하기를 원하며
의법(依法)하며 : 법을 의지하기를 원하며
수법(隨法)하며 : 법을 따르기를 원하며
해법(解法)하며 : 법을 알기를 원하며
순법(順法)하며: 법을 순하기를 원하며
도법(到法)하며: 법에 이르기를 원하며
주법(住法)하며: 법에 머물기를 원하며
행법(行法)이니라: 법을 행하기를 원함이니라. 그 속에 원(願)자가 다 포함된다.
*
보살(菩薩)이 : 보살이
여시근구불법(如是勤求佛法)호대 : 이와 같이 불법을 구하되
소유진재(所有珍財)를: 있는 바 모든 재산을
개무인석(皆無悋惜)하야 : 다 아낌이 없어서, 오늘 어떤 스님이 본인이 가지고 있던 작
은 절을 팔고 절을 옮기고 하는 이야기를 하면서 법공양에 보태쓰라고 거금을 가져다
주었다. 나는 안받으려고 하는데 안 받을 수도 없는 처지고 아무튼 ‘소유진재(所有珍財)
를 개무인석(皆無悋惜)이라’ 이런 구절을 보고 흉내내면 안된다. 아끼지 말고 다 갖다
주는 것은 좋기야 좋은 일이지만 가능하면 자기 분을 잘 헤아려서 자기 처지를 잘 헤
아려서 하는 것도 좋다. 너무 인색하게 사는 것도, 할 만한 처지인데도 안하는 것도 또
잘못이다. 중도라고 하는 것이 그렇게 어려운 것이다. 중도적인 삶을 사는 것은 그만치 
지혜가 있어야 된다. 부지런히 불법을 구하되 가지고 있는 모든 재산에 대해서 아끼지
말라
불견유물(不見有物)이: 어떤 물건도 
난득가중(難得可重)이요: 얻기 어려운 가히 무거운 것을 보지 못했고, 어떤 물건도 말하
자면 이 불법보다 얻기 어렵다고 한 것을 본 적이 없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금강경에 ‘삼천 대천 세계만한 금은보화를 보시한 것보다 금강경
한 구절을 남을 위해 설명하는 것이 더 소중하고 더 값지고 공덕을 더 많이 얻는다’고
귀에 못이 박히도록 이야기 하고 있다. 우리가 다 잘 아는 내용이다. 어떤 물건도 불법
한 구절 보다 더 소중한 것은 없다고 하였고 그게 사실이다. 사실이지만 우리 가슴에는
와 닿지가 않는다.
단어능설불법지인(但於能說佛法之人)에 : 다만 능히 불법을 설하는 사람에게
생난조상(生難遭想)하나니 : 만나기 어렵다고 하는 생각을 내나니.
우리가 화엄경을 깊이 잘 공부하면서 제대로 이해하기로 하고 정말 내 가슴에 나를 감
동시키는 구절로 받아들이는 일은 참으로 만나기 어렵다는 생각을 내야 한다.
사실이다. 사람을 두고 이렇게 생각할 것이 아니고 ‘화엄경은 정말 만나기 어려운 것이
다’ 라는 생각을 해야 된다.
*
시고(是故)로 : 시고로
보살(菩薩)이 : 보살이
어내외재(於內外財)에 : 안팎의 재산, 십회향품에 나오지만 안은 내 몸을 위시한 몸을
중심으로 손이나 발이나 눈이나 코 그런 것을 말하고 외재라고 하는 것은 그 외 재산
과 논밭전지라고 하든지 기타 것을 말한다.
위구불법(爲求佛法)하야 : 불법을 구하기 위해서 그것을
실능사시(悉能捨施)호대: 다 능히 버리고 보시하되
무유공경(無有恭敬)을 : 공경하지 아니함이 없거늘
이불능행(而不能行)하며 : 그 어떤 공경도 능히 행하지 아니함이 없으며
무유교만(無有憍慢)을 : 어떤 교만도
이불능사(而不能捨)하며 : 능히 버리지 아니함이 없다. 자기가 아무리 잘나서 이 세상
나라를 한 수백 개 가지고 있는 대통령이라 하더라도, 세계에서 제일 좋은 절을 한 백
개 자기가 거느리고 있다 하더라도, 그러면 그 교만이 얼마나 대단하겠는가? 그런 것을
다 소유해서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그 어떤 교만도 다 버려야 하며
무유승사(無有承事)를 : 어떤 공경도
이불능작(而不能作)하며 :능히 짓지 아니함이 없다. 그러니까 받들어 섬기는 것도 내가
할 수 있는 한 한없이 끝없이 그렇게 한다는 뜻이다.
무유근고(無有勤苦)를 : 부지런히 하고
이불능수( 而不能受)니라 : 고통스럽고 힘들고 하는 것을 능히 받아들이지 아니함이 없
다. 다 받아들인다. 표현이 아주 대단하다. 정법근수(正法勤修)라, 정법을 부지런히 닦
는다.

  9, 歡喜心

若聞一句未曾聞法하며 生大歡喜를 勝得三千大千世界滿中珍寶하며 若聞一偈未聞正法하면 生
大歡喜를 勝得轉輪聖王位하며 若得一偈未曾聞法이 能淨菩薩行하면 勝得帝釋梵王位하야 住
無量百千劫하며 若有人이 言호대 我有一句佛所說法이 能淨菩薩行이니 汝今若能入大火坑하야
受極大苦인댄 當以相與라하면 菩薩이 爾時에 作如是念호대 我以一句佛所說法이 淨菩薩行故로
假使三千大千世界에 大火滿中이라도 尙欲從於梵天之上하야 投身而下하야 親自受取어든 況小
火坑에 而不能入가 然我今者에 爲求佛法하얀 應受一切地獄衆苦어든 何況人中에 諸小苦惱아하
야 菩薩이 如是發勤精進하야 求於佛法호대 如其所聞하야 觀察修行이니라 此菩薩이 得聞法已하고
攝心安住하야 於空閑處에 作是思惟하야 如說修行하야 乃得佛法이니 非但口言으로 而可淸淨이니

“만약 일찍이 듣지 못했던 법을 한 구절만 들어도 크게 환희하며 삼천대천세계에 가
득한 보배를 얻은 것보다 더 수승하게 여기느니라.
만약 듣지 못했던 바른 법을 한 게송만 들어도 크게 환희하여 전륜성왕의 지위를 얻
은 것보다 더 수승하게 여기느니라.
만약 듣지 못했던 법을 한 게송만 얻어서 보살의 행을 깨끗이 하여도 제석천왕이나
범천왕의 지위를 얻어서 한량없는 백천겁을 지내는 것보다 수승하게 여기느니라.
만약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나에게 부처님이 말씀하신 한 구절의 법이 있어 보살의
행을 청정하게 할 것이니 그대가 지금 능히 큰 불구덩이에 들어가서 엄청난 고통을
참을 수 있다면 마땅히 일러주리라.’고 한다면 보살이 그때에 생각하기를 ‘내가 부
처님이 말씀하신 한 구절의 법을 듣고 보살의 행을 청정하게 할 수 있다면 가령 삼천
대천세계에 가득한 큰 불구덩이 속에라도 오히려 범천의 위에서 몸을 던져 떨어지는
일을 몸소 받을 터인데 하물며 이 조그만 불 속에 들어가지 못하겠는가. 그런데 내가
지금 불법을 구하기 위해서는 일체 지옥의 고통도 응당히 받거니와 하물며 인간에게
있는 조그만 고통이겠는가.’라고 하느니라. 보살이 이와 같이 부지런히 정진하여 불
법을 구하고 들은 대로 관찰하고 수행하느니라.
이 보살이 법을 듣고는 마음을 거두어서 안주하여 텅 비고 한가한 곳에 있으면서 생
각하기를 ‘말한 대로 행을 닦고야 이에 불법을 얻은 것이니, 다만 말만 하여서는 청
정할 수 없으리라.’라고 하느니라.”

*
환희심(歡喜心)
*
약문일구미증문법(若聞一句未曾聞法)하며: 약문일구미증문법하면 ‘하면’ 이라고 해야 된
다. 만약에 한 구절도 일찍이 법을 듣지 아니한 것을 들었다고 한다면, 그런 경우를 우
리는 자주 만난다. 예를 들어서 이 화엄경을 통해서 생전에 듣도 못한 구절을 듣는 것
이다. 오늘도 귀에 익숙한 것도 있지만 처음 듣는 내용도 사실 상당하다. 그럴 경우
생대환희(生大歡喜)를: 큰 기쁨 내기를 
승득삼천대천세계만중진보(勝得三千大千世界滿中珍寶)하며: 이 삼천대천세계 지구에 온
갖 보물 금은보화를 가득히 담아서 나에게 줬다고 해도 그런 보물을 얻은 것보다도 훨
씬 수승하게 여긴다. 로또 복권은 아예 이야기도 하지 말아야 된다.
약문일게미문정법(若聞一偈未聞正法)하면 : 한 게송이라도 만약에 듣지 못한 정법을 들
은 것이 있다면
생대환희(生大歡喜)를: 큰 환희심 내기를
승득전륜성왕위(勝得轉輪聖王位)하며: 전륜성왕의 지위를 얻은 것보다도 더 수승하게
여긴다.
*
약득일게미증문법(若得一偈未曾聞法)이: 만약 한 게송이라도 일찍이 듣지 못한 것을 얻
은 것이
능정보살행(能淨菩薩行)하면: 능히 보살행을 청정하게 했다면 ‘그 동안 들은 것은 다 무
시하고라도 나는 이 구절 하나만 의지하고 보살행을 실천해야 되겠다’ 이런 경우가 있
다면
승득제석범왕위(勝得帝釋梵王位)하야: 제석천이나 범천의 왕위를 얻은 것보다도 더 수
승하게 여긴다. 참 대단하다. 왕위를 얻어서 
주무량백천겁(住無量百千劫)하며: 무량 백천겁에 머문 것보다도 더 수승하게 여기며 
*
약유인(若有人)이 : 만약 어떤 사람이
언(言)호대 : 말하기를
약유일구불소설법(我有一句佛所說法)이: 나에게 하나의 부처님이 설한 바 법이 있어 
능정보살행(能淨菩薩行)이니: 능히 보살행을 훌륭하게 만든다. ‘이 구절 하나면 능히 보
살행을 훌륭하게 여긴다’ 그렇게 하는 사람이 있다면, 보살행을 청정하게 하는 것이 있
으니
여금약능입대화갱(汝今若能入大火坑)하야: 그대가 지금 만약에 능히 큰 불구덩이에 들
어가서 
수극대고(受極大苦)인댄: 지극한 고통을 받아낼진댄 
당이상여(當以相與)라하면 : 마땅히 너에게 주겠다.
열반경의 설산동자 이야기가 생각날 것이다. 설산동자가 마지막 한 구절을 더 듣기 위
해서 낭떠러지에서 떨어져서 나찰의 먹이가 되는 이야기다. 불구덩이에 떨어지게 한다
고 하더라도 그것을 들으려고 하는 것이다.
보살(菩薩)이 : 보살이
이시(爾時)에 : 그 때에
작여시념(作如是念)호대 : 이와 같은 생각을 하되
아이일구불소설법(我以一句佛所說法)이 : 나에게 한 구절의 부처님이 설한 바 법이
정보살행고(淨菩薩行故)로 : 보살행을 청정하게 하는 까닭으로
가사삼천대천세계(假使三千大千世界)에 : 이 우주에
대화만중(大火滿中)이라도: 큰 불이 가득 찼다 하더라도
상욕종어범천지상(尙欲從於梵天之上)하야 : 저기 범천이라고 하는 높은 하늘 위에 올라
가서 거기에서
투신이하(投身而下)하야:  떨어져서, 그 불구덩이에 떨어져서  
친자수취(親自受取)어든: 친히 스스로 받아서 취하거든, 그 부처님의 한 구절, 불설소법
을 부처님의 설법한 바를 듣는다. 그런데 유의해야 할 조건이 있는데 그 설법은 정보살
행, 보살행을 청정하게 하기 위한 일이어야 한다.
얼마 전인가 내가 수화하는 혜성스님에 대해 이야기 한 적이 있다. 그 비구니스님이야
말로 보살인데 나는 한 번도 만나본 적은 없지만 그 스님의 행적, 활동상황 같은 것이
요즘은 인터넷에 잘 나와서 다 알고 있다.
그랬더니 오늘 아침에 혜성스님이 내게 전화를 걸어와서 ‘스님이 나를 알아줘서 고맙습
니다’ 라고 하였다. 나한테도 참 잘하는 거사가 그 스님과도 알아서 ‘스님이 보살행 아
주 잘한다’고 무비스님이 말했다고 전해줬다는 것이다.
‘견문이 좁아서 다 모르는데 내가 알기로는 우리나라에서 스님하고 보각스님이 지난 시
간에 소개한 보각스님이 보살행을 제일 잘하는 것으로 알고 있어서 평소에 늘 고맙게
여깁니다. 고맙게 생각합니다’라고 나도 인사를 했다. 
여기 ‘보살행을 청정하게 한다. 보살행을 훌륭하게 하는 구절이라야 된다’는 말이 나왔
다. 아무리 고준한 법문이라 하더라도 보살행으로 실천되는 법문이 아니면 해당이 안되
는 것이다. 화엄경에서는 그렇다. 보살행으로 회향되고 보살행에 도움 되는 말이라야
된다. 행보살행, 정보살행, 능정보살행, 등등 보살행을 청정하게, 훌륭하게 하기 위한
까닭으로 삼천대천세계에 불길이 가득한 데를 저 높은 하늘에서 뛰어내려서 충분히 내
가 공양 올릴 수 있다고 하였다. 보살행에 도움이 되는 한 구절을 위해서 그렇게 한다
는 것이다. 그렇게도 하는데
황소화갱(況小火坑)에 :  하물며 조그만한 불구덩이에  
이불능입(而不能入)가 : 능히 들어가지 그까짓거 못들어 가겠는가.
연아금자(然我今者)에 : 그러나 내가 지금에
위구불법(爲求佛法)하얀 : 불법을 구하기 위해서는
응수일체지옥중고(應受一切地獄衆苦)어든 : 일체지옥의 온갖 고통을 응당히 다 받아들
이거든
하황인중(何況人中)에: 어찌 하물며 사람 가운데 있는 
제소고뇌(諸小苦惱)아하야 : 모든 작은 고뇌, 작은 고통쯤이야 무슨 문제가 되겠는가.
위법망구(爲法忘軀)라고 하는 불법을 위해서 몸을 다 잊어버리는 정신을 이 단락에서
잘 표현하고 있다. 그것도 환희심으로 그렇게 하는 것이다. 제목이 환희심이다.
보살(菩薩)이 : 보살이
여시발근정진(如是發勤精進)하야: 이와 같이 부지런한 정진을 발해서 
구어불법(求於佛法)호대 : 불법을 구하되
여기소문(如其所聞)하야 : 그 들은 바와 같이 해서
관찰수행(觀察修行)이니라: 관찰해서 수행하느니라. 만약에 우리가  며칠 못살고 죽는다
고 하면 그동안 불법 공부한 것을 다 동원해서 남은 시간, 남은 능력, 남은 힘, 남은
재산, 남은 지식, 남은 수행을 가지고 어떻게 쓸 것인가?
아무도 보장할 사람도 아는 사람도 없지만 만약의 경우 남은 생이 일주일 밖에 안된다
면 그 시간을 어떻게 쓰겠는가? 한 번 스스로 잘 생각해 봐야 된다.
일주일이 아니라 앞으로 70년을 더 사는 한이 있더라도 항상 남은 시간이 ‘일주일이다’
라고 생각한다면 자기에게 가장 가치 있는 일을 할 것이 아닌가?
그동안 가슴에 묻어 두었던 고백하지 못한 말이 있으면 그 말부터 하려고 할 것이고
어떻게 하더라도 그 사람을 찾아가서 ‘내가 수십 년 동안 가슴에 묻어 두었던 이 말 한
마디 하고 죽겠다’ 고 하는 경우도 있을테고 별별 일이 있을 것이다.
어떻게 살아왔느냐에 따라서, 각자 자기 살아온 가치관, 인생에 대한 가치관에 의해서
그 표현이 다 다를 것이다.
전에 어떤 조실스님이 상좌에게 주지를 내놓고 나니까 아무 권한도 없어졌다. 옛날에
주지할 때는 마을 사람들이 절 앞 가게를 계약하러 오면서도 과일바구니라도 가져와
얻어먹고 도장 찍어주고 그랬는데 조실은 아무 권한이 없는 것이다. 그래서 상좌보고
‘나 조실 필요 없다. 한 달만 주지 좀 하게 해달라’고 하였다고 한다.
남은 인생이 일주일이나 한 달로 기한이 정해져 있다면, 남은 원한도 많을 것이고 소원
도 많을 것이고 숨겨둔 어떤 감정도 많을 것이다.
‘나는 누구하고 원결이 있는데 그 사람 찾아가서 손바닥으로 뺨을 한 번 되게 후려치고
싶다’ 그런 것이 늘 가슴에 사무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런 것도 한번씩 생각하면
서 살아야 그래도 남은 시간을 보다 더 가치있게, 보람되게 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
각이다.
*
차보살(此菩薩)이 : 이 보살이
득문법이(得聞法已)하고 : 이러한 법을 듣고 나서는
섭심안주(攝心安住)하야 : 마음을 딱 거둬들여 안주해서
어공한처(於空閑處)에 : 한가한 곳에서
작시사유(作是思惟)하야 : 이러한 생각을 하되
여설수행(如說修行)하야 : 설한 바와 같이 수행해서
내득불법(乃得佛法)이니 : 이에 불법을 들음이니
비단구언(非但口言)으로 : 비단 말로써만
이가청정(而可淸淨)이니라: 가히 청정하게 하는 것이 아니니라. 실제로 몸으로 실천한다
는 말이다.

 10, 發光地의 四禪과 四空
     (1) 四禪
佛子야 是菩薩이 住此發光地時에 卽離欲惡不善法하고 有覺有觀하야 離生喜樂하야 住初禪하며
滅覺觀하고 內淨一心이라 無覺無觀하야 定生喜樂하야 住第二禪하며 離喜하야 住捨하며 有念하며
正知하야 身受樂하나니 諸聖所說로 能捨有念受樂하야 住第三禪하며 斷樂하야 先除苦喜憂滅하고
不苦不樂하야 捨念淸淨하야 住第四禪하니라
 
“불자여, 이 보살이 발광지(發光地)에 머물렀을 때에는 곧 욕심과 악한 일과 선하지
못한 법을 여의고, 깨달음[覺]도 있고 관[觀]도 있으면 여의어서 기쁘고 즐거움을 내
어[ 離生喜樂] 초선(初禪)에 머무느니라.
깨달음과 관찰함을 멸하고[滅覺觀] 속으로 한마음을 깨끗이 하여 [內淨一心] 깨달음
도 없고 관찰함도 없으면[無覺無觀] 선정으로 기쁘고 즐거움을 내어[定生喜樂] 제2
선에 머무느리라.
기쁨을 여의고[離喜] 버리고 생각이 있고 바로 아는 데 머물러[住捨有念正知] 몸으로
즐거움을 받으면[身受樂], 여러 성인이 말하는 바 능히 버리고 생각이 있어 즐거움을
받아서[諸聖所說能捨有念受樂] 제3선에 머무느니라. 즐거움을 끊어 먼저 고통을 없애
고, 기쁨과 근심이 멸하였으므로 괴롭지도 않고 즐겁지도 않으면, 버리는 생각이 청
정하여서[捨念淸淨]제 4선에 머무느니라.”

*
발광지(發光地)의 사선(四禪)과 사공(四空)
*
발광지의 사선 사공이라. 네 가지 선정과 밑에 네 가지 공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사
선이니 사공이니 이런 낱말들은 아함부 불교인 소승불교에 있는 내용들인데 십지품에는
다 나열되어 있다. 화쟁(和諍)이라고 하여 다툼을 화합시키고 대승불교와 융화 시키고
다 흡수하려는 뜻에서 여기에 실려 있는 것이다.
별 내용도 아니면서 설명이 아주 까다로운 내용들인데 이 십지품에서 우리가 그런 것
들도 다 섭렵하고 넘어가야 할 상황이다. 먼저 사선이다.
*
사선(四禪)
*
불자(佛子)야: 불자야
시보살(是菩薩)이 : 이 보살이
주차발광지시(住此發光地時)에: 이 발광지에 머물렀을 때
즉이욕악불선법(卽離欲惡不善法)하고: 욕과 악과 불선법을 떠나고, 발광지에 머물렀을
때 욕심, 악, 선하지 못한 법을 떠나고
유각유관(有覺有觀)하야: 거기에 깨달음도 있고 관찰함도 있다. 욕심과 악과 불선법을
떠나는데 잘 살펴서 관찰을 해야 된다.
이생희락(離生喜樂)하야: 떠남으로 해서 기쁨을 낸다. 악과 불선을 떠나면 기쁠 것이다.
악과 불선을 잘 관찰해서 그것을 떠나면 기쁨이 있는데
주초선(住初禪)하며: 그것이 초선에 머무는 것이다. 혹은 초선천(初禪天)이라고 해서 천
상에 올라가는 정도의 수행을 한다는 표현들도 있다. 화엄경에서는 그렇게 까지는 이야
기 안한다.
*
멸각관(滅覺觀)하고 : 멸각관과 지각하고 관찰하고 각관을 소멸하고
내정일심(內淨一心)이라 : 일심을 청정하게 하는 것 텅 비우는 것이다. 그래서 
무각무관(無覺無觀)하야 : 깨달음도 없고 관찰함도 없어서
정생희락(定生喜樂)하야 : 선정으로써 희락을 낸다. 2선천에 올라가서 선정을 닦을 때의
어떤 단계 그 때 심리상의 어떤 모습을 이야기 하는 것이다.
각도 없고 관찰하는 것도 없다. 지각하여 아는 것도 없고 관찰하는 것도 없어서 선정으
로써의 기쁨을 내는 것이
주제이선(住第二禪)하며: 주제이선이다. 제 2선천에 머물려는 것이다.
아함부 경전에서 이런 이야기를 많이 하고 지금도 우리나라에 아함부 경전을 이야기
하는 부파불교가 상당히 성행을 하는데 거기에서 이런 이야기를 더러 한다.
그런데 그 사람들도 잘 모른다. 이것은 부처님이 경험한 바를 설명해 놓은 것이다.
*
이희(離喜)하야 : 기쁨까지도 떠나서, 위에 안정으로써 기쁨을 내어서 제2선에 머문다고
했으니까 그다음에 제3선이다. 그 기쁨까지도 떠나서
주사(住捨)하며 : 사하며 
유념(有念)하며 : 생각이 있으며
정지(正知)하야 : 바르게 아는 데까지 머물러서, 머물 주(住)자를 거기에 새긴다. 머물러
서 
신수락(身受樂)하나니: 몸으로써 즐거움을 받나니
제성소설(諸聖所說)로 : 모든 성인들이 설한 바로써
능사유념수락(能捨有念受樂)하야: 능히 버리고, 모든 것을 버리고 생각만을 두어서 낙을
받아서 
주제삼선(住第三禪)하며 : 제3선에 머문다. 해석은 이렇게 하지만 이런 내용은 나도 잘
모르는 내용이다. 이것은 초기 선정을 닦을 때 느낀 바인데, 초기 선정이 정상적으로
어떻게 닦고 어떻게 느끼고 했는지는 개인마다 다를 것이고 판에 박은 듯한 가르침은
지금으로서는 알 수가 없다. 그러나 누군가 이러한 경험은 틀림없이 했을 것이다. 그러
니까 경에 이렇게 나와 있다. 제 3선에서 누리는 공부의 경지다.
*
단락(斷樂)하야 : 즐거움을 끊어서
선제고희우멸(先除苦喜憂滅)하고 : 먼저 고를 제하고 기쁨과 근심이 소멸하고  
불고불락(不苦不樂)하야 : 소멸하면 고통도 아니고 즐거움도 아니다.
사념청정(捨念淸淨)하야 : 버리는 마음이, 결국은 버리니까 버리는 마음이 텅 비어서 청
정해져서 
주제사선(住第四禪)이니라 : 제 4선에 머문다.
 
(2) 四空   

超一切色想하며 滅有對想하며 不念種種想하고 入無邊虛空하야 住虛空無邊處하며 超一切虛空
無邊處하야 入無邊識하야 住識無邊處하니라
超一切識無邊處하야 入無少所有하야 住無所有處하며 超一切無所有處하야住非有想非無想處호
대 但隨順法故로 行이언정 而無所樂着이니라

“모든 물질이란 생각을 초월하고 [超一切色想] 상대가 있다는 생각을 멸하여 [滅有
對想], 갖가지 생각을 기억하지 않으면[不念種種想], 끝없는 허공에 들어가 허공이
끝없는 곳에 머무느니라[住虛空無邊處].
일체 식이 끝없는 곳을 초월하면 조그만 것도 없는데 들어가 아무것도 없는 곳에 머
무느니라[住無所有處]. 일체 아무것도 없는 곳을 초월하면 생각이 있지도 않고 생각
이 없지도 않은 곳에 머무느니라. 일체 아무것도 없는 곳을 초월하면 생각이 있지도
않고 생각이 없지도 않은 곳에 머무느니라[住非有想非無想處]. 다만 법을 따라서 행
할지언정 즐거워 집착하는 일은 없느니라.”

*
사공(四空)
*
초일체색상(超一切色想)하며: 일체 색상을 떠나며
멸유대상(滅有對想)하며 : 소멸해서, 초월하니까 일체 세계에 대한, 사물에 대한 생각을
초월해서, 대하는 생각이 있음을 소멸한다. 멸(滅)자를 나중에 새긴다. 그래서
불념종종상(不念種種想)하고 : 가지가지 생각을 기억하고 염(念)자가 이럴 때는 기억이
라는 뜻이다. 뒤에 생각 상(想)하고 다르게 해석하기 위해서 염자를 썼다. 가지가지 생
각을 기억하지 아니하고 
입무변허공(入無邊虛空)하야 : 무변허공에 들어가서, 생각이 그렇게 한다는 것이다.
주허공무변처(住虛空無邊處)하며 : 허공무변처에 머물며, 사선 위에 사공을 닦는다는 것
이다. 이것이 초기에 소승 불교에서 수행하던 내용이다. 지금도 이렇게 하는지는 알 수
가 없다.
*
초일체허공무변처(超一切虛空無邊處)하야 : 일체 허공무변처까지를 초월해서
입무변식(入無邊識)하야 : 가이 없는 식에 들어가서
주식무변처(住識無邊處)하니라: 식무변처 의식이 가히 없는 곳에 머무나니라. 거기가 두
번째인 제2공 이야기다.
*
초일체식무변처(超一切識無邊處)하야: 계속 초(超)가 나오는데 초월한다는 것이다. 한단
계 한단계 초월하면서 올라가는 형식이다. 일체허공무변처를 초월해서 무변식에 들어가
서 식무변처에 머무나니라. 그리고 일체식무변처를 초월해서
입무소소유(入無少所有)하야: 조그마한 것도 있는 바가 없는 데 들어가서, 아무것도 없
는 데 들어간 것이다. 그래서
주무소유처(住無所有處)하며 : 무소유처에 머물며 것이 3공 이야기다. 삼공까지가 올라
가는 것이고 그다음 
초일체무소유처(超一切無所有處)하야 : 일체 무소유처까지도 초월해서
주비유상비무상처(住非有想非無想處)호대: 상이 있는 것도 아니고 생각이 없는 것도 아
닌 곳에 머물되
단수순법고(但隨順法故)로: 다만 법을 수순하는 까닭에
행(行)이언정 : 행이 있을지언정
이무소락착(而無所樂着)이니라 : 즐거워서 집착하는 바가 있는 것은 아니다. 즐거워하는
바는 없다. 무슨 말인지 잘 모를 것이다.
자기가 선정을 닦아서 경험해 가는 어떤 과정들을 소승 불교에서는 자주 이야기 하고
있는데 화엄경에서 이것을 배제하고 그동안 이런 이야기가 전혀 없었다.
그런데 화엄경에서 이런 것을 한 마디도 안한다면 그 사람들을 수용할 수가 없는 것이
다. 그 사람들을 수용하려면 이런 이야기를 대충이라도 짚고 넘어가야 된다. 그래서 이
런 이야기를 한 것 같다.

    (3) 四禪 四空의 功果
       가, 四無量心

佛子야 此菩薩이 心隨於慈하야 廣大無量不二하며 無怨無對하며 無障無惱하며 遍至一切處하며
盡法界虛空界하야 遍一切世間하나니 住悲喜捨도 亦復如是하니라

“불자여, 이 보살이 마음이 인자[慈]함을 따르나니, 넓고 크고 한량없고 둘이 아니
고, 원수가 없고, 상대가 없고, 장애가 없고, 시끄러움이 없으며, 온갖 곳에 두루 이
르며, 법계와 허공계를 끝까지 하여 일체 세간에 두루 하느니라. 불쌍히 여기고[悲]
기뻐하고[喜] 버리는 데[捨] 머무는 것도 또한 이와 같으니라.”
 
*
사선(四禪)사공(四空)의 공과(功果)
*
사무량심(四無量心)
*
이것은 보살불교 대승불교에서 자주 이야기 하는 것이라서 좀 쉽다.
*
불자(佛子)야 : 불자야
차보살(此菩薩)이 : 차보살이
심수어자(心隨於慈)하야 : 마음이 자(慈) 자애 사랑하는 것을 따라서 
광대무량불이(廣大無量不二)하며: 광대해서 한량없어서 너와 내가 둘이 아니며 
무원무대(無怨無對)하며 : 원망하는 상대도 없고 그 대상도 없으며, 불이(不二)니까 자
비가 아주 충만하면 아무리 누가 나를 해롭게 했다 한들 거기에 대한 어떤 상대적인
원망을 가질 까닭이 없다.
무장무뇌(無障無惱)하며: 장애도 없고 괴로움도 없으며 
변지일체처(遍至一切處)하며: 일체처에 두루두루 이르며 
진법계허공계(盡法界虛空界)하야: 법계 허공계를 다 해서
변일체세간(遍一切世間)하나니 : 일체 세간에 두루하나니, 사랑 자(慈)자 하나만 가지고
해도 그렇다는 것이다.  
주비희사(住悲喜捨)도 : 자비희사 이것이 사무량심이다. 
역부여시(亦復如是)하니라: 비(悲)에 머무는 것도 역시 그렇고 희(喜)에 머무는 것도 역
시 그렇고 사(捨)에 머무는 것은 평등한 마음 자세이다. 어떤 차별과 상대를 다 버리는
상태를 사라고 한다. 사에 머무는 것도 또한 다시 이와 같다.
사선 사공을 제대로 닦으면 사무량심이 된다 이렇게 해놓았다.
사무량심 글은 일단 쉽다.
뒤에 37조도품까지 전부 이야기를 다한다.
37조도품이 지금 부파불교 남방불교에서 들어와서 겨우겨우 이야기는 하는데 내가 그
런 강의들을 유심히 들어보면 전혀 모르고 이야기를 한다. 기껏해야 8정도를 이야기 하
는 정도인데 37조도품 끝에 8정도가 있다.
8정도 아니면 맨 처음에 있는 사념처(四念處) 이야기를 겨우 한다.
신수심법(身受心法)이라고 해서 ‘관신부정(觀身不淨) 이 몸은 부정한 것이다’ 라고 관하
고, ‘관수시고(觀受是苦) 사람이 받아들이고 느끼는 것은 전부 괴로운 것이다’ 라고 소
승불교에서는 본다. 그러나 불고불락(不苦不樂)도 있고 낙도 있는데 어디 괴로운 것만
있겠는가. 그런데도 관수시고라고 한다. 괴로움만 있는 것이다. 또 ‘관법무아(觀法無我)
법이라고 하는 것은 전부 아가 없다’ 무아법을 이야기 한다. 소승불교에서는 입만 벌렸
다 하면 무아를 이야기 한다. 이것은 대승불교에서 말하는 진아 참나 참마음과 늘 대치
되는 것이다.
소승불교에서는 항상 무아만 이야기 하지만, 이야기 하는 그 놈이 바로 참나다.
참나를 가지고서 무아만을 이야기 하니 앞뒤가 안 맞는 것이다.
37조품 중에는 사념처하고 팔정도만 제대로 이해를 하고 제대로 설명을 하지 그 외 그
중간에는 별로 제대로 아는 이도 없고 설명할 큰 수행이 되어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러
면서 아주 골치아픈 부분이다. 그런데 그것을 십지품에는 싹 다 갖다 놓고 한 번 짚고
가는 것으로 되어있다. 지금 보고 있는 사선, 사공부터 이렇게 나오기 시작한다.
오늘 공부 여기까지 하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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