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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맑은소리맑은나라 작성일17-07-31 15:22 조회387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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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서화 詩집 행복 주머니

禪書畵家 수안 스님

수안 殊眼 스님

1940년 경남 통영에서 태어나 진주에서 성장했다.
1957년 출가 이후 평생 선 수행과 그림 그리기, 전각, 시 쓰는 일을 해왔으며, 지금은 통도사 문수원에서
수행 정진하며 작품 활동을 하고 있다.
1979년 이리 이재민 돕기 선묵전을 시작으로 , 1981년 부산에서 첫 개인전을 가진 이후 한 일 중 고승선묵 초대전,
이재민 돕기 선묵전, 프랑스 곽온 박물관, 파리 뤽상부르 궁 초대전, 모나코 몬테카를로 전시회, 모로코 카사블랑카 전시회,
독일의 서베를린과 퀼른 초대전, 러시아 모스크바 크렘린 궁 마네주 전시홀, 이르쿠츠크, 블라디보스토크 초대전 등
수많은 국내 및 해외 전시회를 가졌다.

지은 책으로는 산문집 [참 좋다 정말 좋구나], [아름다운 선물]과 시집 [산이 텅 빈 날], [오소라], [나의 노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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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을 그리거나 시 쓰는 것을 업으로 삼는 사람을 흔히 전업작가라고 한다.
그러나 수행이 삶 자체였고 지금도 한결 같은 모습으로 그 길을 걷고 있는 누군가가 자신의 그림과 시를 모아 한 권의 책으로 엮어 세상에 내놓았다면 그를 수행하는 작가라 해야 할까 아니면 작품 활동하는 수행자라 해야 할까.

상구보리 하화중생.
여기, 求道의 간절함이 차별 없는 인간애와 천진난만한 童心으로 승화되어 그림과 시로 표현된 책 한 권이 있다. 
그리고 이 책에 담긴 모든 그림과 시를 그리고 쓴 작가, 아니 수행자가 있다.
선서화가 수안 스님.
먼저, 스님께서 직접 들려주신 불교와의 인연에 대해 들어보기로 하자.


경남 통영에서 태어나 진주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어느 날 오후, 나는 어른과 아이들이 어우러져 왁자지껄한 풍경을 뒤로 하고, 한쪽 모래밭에서 탑을 쌓았다.
정성을 다해 쌓은 모래탑이 무너지면 다시 쌓기를 여러 번, 문득 주위를 둘러보니 아무도 없었다. 온 세상이 적막강산에 빠진 것 같았다.
모두 떠나고 남은 것은 모닥불이 타다 남은 재와, 그 곁의 자갈과 모래, 그리고 흐르는 강물뿐이었다. 나는 오랫동안 적막한 강가에서 노을을 받아 반짝이는 강물을 바라보며 앉아 있었다.
내가 열 살 때 전쟁이 일어났다. 6.25 전쟁을 거치는 동안 형편은 굉장히 어려워졌고,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모든 재산이 차압당해 이모네 신세를 져야 했다. 이모네 이웃집은 목공소였는데, 어느 날 그 집의 목수 아저씨를 따라 해인사를 가게 됐고, 거기에서 인곡 스님을 만났다. 스님께 절을 하니 스님은 벽에 붙은 그림에도 절하라고 하셨다. 올려다보니 배를 턱 내밀고 웃고 있는 두 남자(한산과 습득)와 동그란 눈을 커다랗게 뜨고 앉은 달마대사 그림이었다. 순간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큰스님 앞에서 절을 하다 웃었으니 혼나고도 남을 일이었다. 그런데 혼나기는커녕 인곡 스님은 내게 과자와 홍시를 건네주며 “내일 또 오너라.”하고 말씀하셨다. 이튿날 친구들을 여럿 데리고 스님을 찾아갔다. 그때 스님은 마치 이솝우화와 같은 재미있는 얘기를 들려주셨는데 그것이 바로 6근과 6식을 설명해주신 거였다.
이후에도 인곡 스님을 찾아갔다. 스님은 여려 경전들을 옛날이야기 하듯 알아듣기 쉽게 설명해주시곤 했다. 가랑비에 옷 젖듯, 서서히 불교물이 들기 시작한 것이다. 도인이 뭔지 불법이 뭔지도 몰랐던 나는 그때부터 불교와 절에 매료되어 절에서 먹고 자고 스님들의 심부름도 하며 지내게 되었다.
당시 진주에는 어린이 법회와 청년회가 매주 일요일 새벽 시내를 다니며 도량석을 했는데, 내가 목탁을 들고 앞장서 걸었던 기억이다. 인곡 스님의 상좌인 운문 스님이 어린이 포교를 하기 위해 시작한 것으로, 운문 스님 곁에서 명함없는 어린이법회 지도 법사를 하며 스님께 들은 법문을 모아두었다가 아이들에게 들려주는 역할도 도맡았던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설봉 스님의 법문을 듣던 도중 문득 ‘참선 수행을 해야 한다’는 인연이 찾아들었고, 그날 이후 줄곧 화두참선에 매진해 왔다.
그리고 나이 열일곱에 세상 말로 ‘입산 출가’를 하게 되는데, 내게는 출가 전과 후가 크게 다르지 않는 생활이 물 흐르듯 흘러가는 것뿐이었다. 어찌되었든 출가를 하여 산과 절에 깃들어 사는 ‘행자’의 삶이 시작됐다. 승도 예비승도 속도 아닌 어중간한 신분으로 행자 비슷한 시간을 보낸 세월까지 보탠다면 꽤 오랜 행자 생활을 거친 셈이다.
난 꽤나 괴짜였다. 공부를 하다가도 불현 듯 국수를 삶아 갖다 두고 공부중인 대중들을 불러내 한 술 뜨게 하기도 하고, 법회 중에 기운이 없고 졸려하는 사람들이 보이면 이것저것 약초를 한 솥에 넣고 탕을 끓여 나누어 주곤 했다.
그러고 보니, 지금도 옛 이야기를 하다보면 회자되는 것이 ‘수안이 음식을 잘한다’는 것이다. 어떻게 요리를 하는 지 배운 적은 없었지만, 호기심이 많아 어느 것도 이리 저리 뜯어보고 살펴보며 궁리하는 성품인지라, 한 음식을 맛보아도 다음을 생각하곤 했었다.
하루는 석정 스님과 일타 스님을 모시고 두 분 스님의 도반 스님이 주석하던 절에 가게 되었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나는 스님들 몰래 국수를 사서 몰래 걸망에 넣고 뒤를 따랐다. 가는 길에 눈에 보이는 제피 잎도 몇 개 따서 주머니에 챙겼다. 절에 도착해 보니 아무도 없었고, 어른스님들을 모신 처지라 공양은 해결해야 했기에 살림을 살펴보니, 쌀독에 쌀만 있을 뿐 된장독은 말라 있고 반찬 하나 없는 게 아닌가. 생각 끝에 우선 물을 끓여 마른 된장독에 넣어 말라붙은 된장을 우려냈다. 거기에 제피와 소금을 넣어 간을 하고 그 물에 국수를 삶아 급히 한 상을 차려냈다. 두 어른은 연신 맛있다고 칭찬을 하며 남김없이 다 드셨다.
그저 해본 것이었다. 밖에서 맛을 본 것을 궁리하고 생각하고 필요에 따라 응용을 한 것이다. 글도 그렇고, 그림 또한 그렇다. 내 삶이 그런 모습이다.
내겐 졸업장 하나 없다. 절에서도 참선만 했고, 강원도 다니지 않았다. 향곡, 일타, 경봉, 석정, 인곡 스님 등 당대의 선지식을 지척에 모시며 살았지만, 스승이라 하면 돌 하나, 나무 하나, 바람소리까지도 다 스승이다. 사방천지가 불법이요, 만물이 불법 문중의 일불제자이고 스승이었던 것이다.
그렇게 나는 출가승이 되었고, 10년, 20년, 30년, 조주선사의 무無자 화두를 들고 ‘조주는 왜 無라 했는가’ 묻고 또 물었다. 언젠가 부턴 빈 종이가 보이면 그곳에 틈틈이 無를 그려 넣었다.
난 지금도 종이 위에 無자를 그린다. 無위에 無를 쌓아 탑을 세운다. 그럴 때면 진주 남강에서의 적막했던 저녁이 떠오른다. 그 저녁의 황혼과 흐르는 강물과 무너져 내린 모래탑이 눈앞에 선하다. 내게 있어 無는 이렇듯 번잡하고 철저한 화두이다. 

[영축총림 통도사 사보 ‘등불’ 2017년 3월호, 맑은소리맑은나라 김정은 기자 취재 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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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 말라붙은 된장, 소금, 국수, 그리고 길 가에서 딴 제피 옆 몇 장만을 가지고 두 어른 스님께 올린 근사한 한 끼 저녁 공양을 만들 수 있었던 이유는 그저 밖에서 맛을 본 것을 궁리하고 생각하고 필요에 따라 응용했을 뿐이었다. 지금까지의 글도, 그림도 이와 다르지 않은 과정 속에서 나온 것이라는 스님의 진솔한 고백에서 제대로 된 학교 교육을 받은 적이 없어 그 흔한 졸업장 하나 없고, 출가 후에도 오직 참선 수행만을 해온, 강원조차 다니지 않았다는 승려가 선서화가가 되기까지의 과정은 순탄치 않았을 것이다. 그저 궁리하고 생각하고 필요에 따라 응용하는 과정을 지금까지 우직하게 해왔을 뿐이라 한다.
그 누구의 가르침도 받지 않고 무소의 뿔처럼 홀로 선서화가의 외길을 걸어왔기에 작품 하나하나엔 짐작조차 하기 힘든 남모를 땀과 눈물이 배어 있음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비뚤배뚤한 서툰 글씨와 엉성하게까지 보이는 그림들을 처음 접하는 독자라면 의아해할 수도 있을 것이다. 코웃음을 치며 실소할 수도 있다. 그러나 한 장 한 장 책장을 넘길 때마다 시끄럽던 머릿속 분별은 잦아들고 어느새 가슴 가득 차오르는 뭉클한 따스함에 찡함을 느끼게 된다. 왜 이런 기분이 들까? 선서화가이기 전에 출가 이후 지금까지 이어져온 수행자로서의 치열한 구도 수행의 결과가 스스로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으며, 눈에 보이는 겉모습은 세상의 기준으로 봤을 때, 그저 울긋불긋한 서툰 낙서로 비춰질지 모르나, 그 안에 담긴 세상과 사람들에 대한 스님의 사랑과 관심이 있는 그대로 담겨 있기 때문일 것이다.
부처님을 닮고자 했던 수행자의 자비심이 세계 곳곳에서 열렸던 그간의 전시회를 찾아온 이의 마음을 움직였고, 오늘날 스님을 세계적인 선서화가로 널리 알리게 된 것이다. 
선서화를 그리고 시를 쓰게 된 계기가 무엇이었는지 밝히진 않았지만 스승이라 하면 돌 하나, 나무 하나, 바람소리까지도 다 스승이고, 사방천지가 불법이요, 만물이 불법 문중의 일불제자이며 스승이라 한 대목에서 스님이 본인의 마음에 비친 일체 대상을 어찌 여겼고 어찌 대했으며 어찌 담아내어 어찌 드러내 왔는지 충분히 알 수 있다.
아래의 시를 보면 그러한 스님의 활짝 열린 마음이 고스란히 읽힌다.
 
바다를 바라보면
마음이 바다다
엄마아~
불러보면
아기가 됩니다

일체대상을 대함에, 바다를 보면 바다가 되고, 하늘을 보면 하늘이 되고, 엄마를 떠올리면 아기가 되고, 부처님을 생각하면 불제자가 되는 것이다. 스님에게는 세상만사 만물이 곧 스승이고 도반이며, 부모형제이고, 일가친척이 아니었겠나.
특히, 스님의 시에 자주 등장하는 단어가, 아니 인물이 있다. 바로 ‘어머니’ ‘엄마’이다.
일찍 아버지를 여읜 스님에게는 아마도 엄마가 세상 전부였을지도 모른다.

누가 지었을까
어머니 이름 석 자
기쁠 때 불러봐도 어머니
슬플 때 불러도 어머니
아무리 불러봐도
싫지 않은 그 이름 어머니
어머니
매화꽃 띄워
차 한 잔 대접하는
아기가 됩니다

얼굴에 주름 가득한 스님일지라도 엄마 앞에선 그저 엄마를 그리워하는 아기가 되고 만다. 세상에 부모 아닌 사람은 있어도, 자식 아닌 사람은 없다. 누구든 부모의 자식이다. 부모와의 인연이 어땠던 건 간에 마음 저 깊은 곳엔 부모님를 그리워하는 애틋한 정을 간직하고 있다. 그리하여 스님은 어머니에 대한 사무치는 그리움을 아기가 되어 써내려 간다. 지금 곁에 계시지는 않지만 단 한순간도 잊어본 적 없는 엄마를 기억하며.


엄마 등에 코를 묻고
나는 엄마냄새가 좋다
땀에 젖은 엄마냄새가 머그리 좋노!
그래도
나는 엄마냄새가 제일 좋다

엄마랑
막내랑
큰나무 아래 앉았다

바람 한 점 지나간다
그 바람 참 시원하다, 그자
그래
그 바람 시원하다

그리고 이어지는 다른 시에선 어렸을 적 가보았던 외갓집 기억이 새록새록 하다.

어머니 고향은 바닷가 갯마을
할아버지, 할머니
이모 두 분 그리고
개구쟁이 외삼촌

갈매기 울음소리도 있고
하얀 파도 알도 있다
그 가운데 나도 있다

그리고 아버지를 그리워하는 마음 가득한 시를 찾아볼 수 있다.

아버지
당신은 깎아지른 절벽 위에 앉아있는
그런 분이다 생각도 했습니다
제 생각이 짧았습니다
잘못했습니다 용서해주세요

아버지 작은 연못가에 꽃이 피었습니다
빙그레 웃으시는
아버지 모습 닮은 꽃이 피었습니다
아버지 감사합니다
또 감사합니다

한때 아버지를 어렵고도 두려운 존재로만 여겼던 지난 어린 시절 자신의 짧은 생각을 반성하며 용서를 빌고 있다. 그리고 작은 연못가에 핀 꽃에서 아버지를 떠올릴 만큼 돌아가시기 전의 아버지보다 더 나이를 먹었고, 아버지의 마지막 모습보다 더 주름진 얼굴이 된 지금, 미처 몰랐던 아버지의 참모습을 깨닫게 되었음에 감사를 드리고 있다.

책에 실린 다른 여러 시들 가운데엔 부처님, 관세음보살님, 도반, 입재, 회향, 영축산 통도사 등 佛家와 관련된 내용이 많은데 승려로서, 수행자로서 한 평생을 살아온 모습 그대로의 깊은 신심이 전해진다. 년 단위로 매년 반복되는 행사와 한결 같은 수행의 나날이 이어지는 사찰 생활이지만 한결같은 처음 그 마음을 간직하고 있기에 늘 보고 접하는 똑같은 대상일지라도 환희심 가득한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시들은 일상에 빠져 굳은 살 박히듯 주변에 무감각해진 스스로에게 다시 한 번 새롭게 주위를 돌아보게 하는 계기가 된다. 

스님의 또 다른 시 가운데엔 절로 미소를 머금게 하는 따뜻한 장면들과 피식 웃음이 이는 장면들이 여럿 담겨져 있다.

동냥 온 거지와 말벗이 되고
世上事 이야기 저 이야기
첫 버스 타려고 네 시에 일어나
아침 일찍 찾아온 거지 아저씨

위 시의 제목은 ‘도반’이다. 스님에겐 신분고하 빈부귀천을 막론하고 누구든 언제든 담소를 나눌 수 있는 함께 하는 수행 도반이다. 첫 버스 시간에 맞춰 새벽 4시에 일어나보니, 때 맞춰 아침 일찍 찾아온 거지 아저씨 손님(!) 그러나 세상사 이야기 저 이야기를 나누며 곧 말벗 된다. 어느새 거지 아저씨를 도반으로 맞이하여 공양 중의 제일 으뜸인 법공양을 나눈다. (아침 공양은 함께 하셨을까?)

집에서 몸 조리하세요
병원의 말씀이다
큰 북 같은 배를 안고 집에 왔다
...... (중략).....
반야심경 이백칠십 자 한 획 한 자씩
검지손가락이 닳고 닳도록
배꼽 위에다 사경이다
시간과 날짜도 잊고
무아지경의 사경기도 뿐이다
묵직하게 느껴지던 아랫배가 움직이더니 급하다
정낭으로 급히 가서 날 것 같은 기분의 시원함이다
뱃속이 다 비워진 상쾌함이다
따뜻한 차 한 잔 공양 올리며
부처님 고맙습니다
이 순간 나는 누구일까?

변비? 아마도...
병원에서 그저 몸조리 잘하시라는 당부와 함께 큰 북만한 배를 안고 돌아온 스님은 부풀어 오른 배 위에 검지손가락을 붓 삼아 반야심경 사경을 하며 무아지경에 빠진다. 검지손가락이 닳거나 뱃가죽이 헐거나 오직 사경기도 뿐이라는 간절함으로 마음을 모았더니 반가운 신호가 온다. 정낭으로 달려가니 날 것 같은 기분의 시원함과 상쾌함이다. 그리고는 부처님께 차 공양을 올리며 감사드린다. 바로 그 순간 떠오른 한 생각, ‘이 순간 나는 누구일까?’ 거북한 뱃속 사정에 잠시 놓았던 화두를 문득 챙겨 든다. 아니, 화두 스스로가 성성하게 드러난 것이다.

시 속에 등장하는 잡화장사 할배, 아랫마을 할매 보살님, 맑은 양산 박보살, 남도에 사는 막내 누이, 해소병 심하신 우리 할배, 얼굴에 하얀 분 바른 아랫마을 아지매 보살, 시골 농협 여자 직원 등.

꽃 가운데 제일 예쁜 꽃은
사랑하는 사람의 미소 짓는 얼굴

이런 모든 이들을 바라보는 스님의 시선엔 따뜻한 무심함이 가득하다. 사랑과 관심으로 대하되, 나서서 끼어들거나 시비 가름하지 않는 너그러운 관조. 이러한 모습이 평범함 속에서 독특함을 드러내고, 무리 가운데서 유일함을 찾아낸다.
갯가 선창가 돌 틈에 다북쑥, 출입문 중간에 웅크리고 앉은 작은 새, 낙화된 동백꽃, 남쪽 섬에서 얻어온 수선화 몇 포기, 길섶에 놓인 빈병에 꽃가지, 엄청 큰 은행나무 노란 잎새, 작설차 나무 아래 흙집 짓는 두꺼비, 공중 화장실 벽면의 수선화, 은행잎 바람 따라 날려 대합실 가득 단풍잎.......
흔하디흔한 주변 풍경이요, 무심히 지나쳐 버리는 작디작은 대상들이지만 스님의 눈엔 이 모두가 그 모습 그대로 부처님의 화현이자, 스승이고 도반이며 가족이고 친척이다.
게다가 스님의 눈에 비친 읍내 장날 철교다리 한쪽에 서서 두 손 꼭 합장하고 지심귀명례 육신공양 올리는 통닭 보살님, 삼겹살 보살님, 우엄매 보살님 등 역시 세상 둘 없는 귀하디귀한 존재로서 시 속에 등장한다. 
스님의 따뜻한 눈을 빌어 바라보자면 어느새 나와 그들의 경계가 사라져 버린다.

그림은 몇 가지 안 되는 색깔이지만 울긋불긋 화려하고, 형체를 나타내는 먹선은 거침없고 투박하다. 그림 속 등장인물은 작달만한 키와 왜소한 체구에 머리가 큰 가분수이며, 펑퍼짐한 얼굴엔 반달 두 개를 나란히 엎어놓고, 그 아래 작은 반달 하나를 바로 놓아 활짝 웃는 모습의 동자童子와 스님과 보살님과 부처님을 그리고 있다. 언뜻 보면 아이들이 나름 실력을 발휘해 그린 그림 같기도 하다. 그런데 그림만큼이나 천진난만한 막힘없이 술술 읽히는 시들을 읽다보면 어느새 스스로를 되돌아보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부모님과 가족을 떠올리며, 집근처 동네 사람들이 그냥 아무 이유도 없이 생각나기도 하고, 어릴 적 친가와 외갓집에 갔었던 기억을 더듬고 있다. 너무도 당연하게 여겼던 것들이 그토록 소중한 것들이었음을 문득 깨닫게 되면서 그동안 자신은 어떠했는지를 돌아보는 것이다. 여러 시의 마지막 구절에 뜬금없이 나타나는 ‘나는 누구인가?’라는 스님의 화두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이렇듯 스님의 그림과 시는 단순하고 명쾌하며 따뜻하고 친근하지만 쉽게 보고 쉽게 읽고 덮어버릴 책은 아니다. 오래오래 곁에 두고 손닿는 대로 언제든 아무 곳이나 펼쳐 봄으로써 잊고 있었던 소중한 것들을 다시금 떠올려 돌아보게 하는 계기를 삼을 수 있기 때문이다. 가장 소중한 자기 자신은 말할 것도 없고.

본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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